[횡설수설]김순덕/긴장과 공포

  • 입력 2003년 3월 18일 19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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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기 초 교사가 단시간 내 학생들을 다잡는 방법 중 하나가 교실을 바짝 긴장시키는 것이다. 지각 절대금지, 숙제 청소 철저 검사, 제대로 못할 때 운동장 달리기. 이런 식으로 며칠만 가면 학생들은 ‘군기’가 바짝 든다. 물론 교사는 “교실을 공포에 떨게 만들겠다”는 식의 표현은 안 한다. 다 학생들을 위해서이며 수업분위기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 처지에선 완전 공포분위기다. 그나마 달리기 벌칙이 공평하게 적용되면 좋은데 누구는 해프닝이라고 봐주고, 누구 학부모와는 친하니까 봐주게 되면 자발적 학습 열기는 사라지고 만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처럼 긴장은 놀라운 힘을 발휘하지만 때로는 긴장없이 하는 일이 더 좋은 효과를 내기도 한다. 골프가 그렇다.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최고경영자(CEO) 스콧 맥닐리는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식으로 팽팽하게 긴장해서 공을 치는 ‘단심가 골프’로 유명하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하며 편안하게 ‘하여가 골프’를 친다. 점수로 치면 맥닐리가 한 수 위이기는 하다. 그러나 선마이크로시스템스가 만드는 JAVA가 성능에 비해 네트워크가 취약하다는 평을 듣는 반면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는 그 뛰어난 호환성과 유연성으로 정보기술(IT)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디지털시대 CEO의 리더십으로 긴장보다는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풀이가 여기서 나온다.

▷문희상 대통령비서실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 중요한 통치술의 하나는 긴장”이라고 했다. 문 실장은 “언론 정치 검찰 모든 것과 긴장관계로 돌아서고 있다”며 “서로 피곤하지만 정상화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언론과의 긴장관계 덕분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고 했다. 몸가짐을 조심하고 치명적 실수를 하지 않도록 스스로 다듬은 덕에 오늘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그러나 위에서 조성하는 긴장 분위기가 아래에도 같은 무게로 다가올지는 의문이다. 받아들이는 쪽에게는 긴장 아닌 공포가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긴장 리더십’은 마키아벨리의 공포군주론과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다. 그는 ‘군주론’에서 백성들에게 사랑받는 것보다 무섭게 여겨지는 편이 군주로서 안전한 선택이라고 했다. 인간은 무서운 자보다 사랑하는 자를 사정없이 해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곧이어 다음 부분을 강조했다. 군주는 사람들이 자기를 두려워하도록 만들어야 하지만 존경은 못 받더라도 최소한 증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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