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종소리'…'메마른 삶' 따뜻하게 보듬는 모성

  • 입력 2003년 3월 7일 17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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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라는 제목은 먼저 청감(聽感)을 깊게 울린다. 신경숙(40)의 소설에서는 적요함과 함께, 조금씩 공기와 섞여들면서 종래에는 제 모습을 온전히 감추는 종소리의 그 은근함이 어우러진다.

이 소설집에서도 신경숙은 웅크린 슬픔과 단절된 관계, 고독을 특유의 느릿하고 정적인 공간 속에서 세밀하게 그려낸다. 세상을 향해 개폐를 반복하는 공간에서, 현대를 사는 우리의 건조하고 하찮은 일상의 내면을 밝히는 것이다.

‘팽팽한 긴장과 느린 반전’으로 서사를 탄탄하게 이어가는 이번 작품들에는 황량한 채 내버려두지 않는, 세상을 아우르는 모성을 발견하게 되는 기쁨이 있다.

세 번째 유산을 한 여자, 자신을 ‘폐허’로 인식하는 여자는 남편의 방황과 거식증을 이해할 수가 없다. 어느 날 세면장 창틀에 낯선 새 한 마리가 집을 짓는다.

한때 비상하는 새를 꿈꾸었을지도 모르는 남편. 도시의 삶은 남편을 한없이 야위어가게 한다. “그 사람이 사력을 다해서 쏜 것이 뭐였을 것 같아?” “무엇이었는데?” “적막.”

병상에 누운 남편 곁에서 여자는 꿈에서 창공을 나는 새떼를 본다. 그 속에 남편이 섞여있는 듯도 싶다. ‘당신은 이제 돌아온 새 같다’고, 여자는 날개를 펼쳐 그를 보듬는다. (종소리)

피부관리실에서 일하는 ‘그녀’는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견딜 수 없는 전의에 밤마다 불을 지르러 다니는 ‘그녀’. ‘그녀’에게 ‘다방 여자’가 다가온다. 다방 한가운데 대형 수족관을 두고 악어를 기르는 ‘다방 여자’는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

이 둘의 매개는 이들에게 각기 다른 상징이 되는 ‘악어’다. ‘그녀’에게 악어는 ‘광포함’이며, 이러한 폭력성이 자신을 불안정하게 하는 건물 관리인에게 투사된다. 딸을 버려야 했던 ‘다방 여자’에게 모성을 지닌 악어는 신성한 ‘사원’이다. (물 속의 사원)

‘물 속의 사원’을 비롯해 ‘우물을 들여다보다’ ‘달의 물’에는 물의 이미지가 충만하다. 찰랑이는 서늘한 물은 작가의 ‘소설 쓰기란 결국 어머니 마음 가장 가까이 가기’라는 고백과 합류하며 모나고 메마른 삶의 여러 모양을 어머니처럼 끌어안고 있다.

같은 오피스텔 건물에 살 뿐,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남녀가 1월 1일 부석사를 향해 길을 떠난다. 두 개의 부석(浮石) 사이가 떠 있다는 곳.

결혼하리라 믿었던 P가 급작스레 다른 여자와 약혼을, 결혼을 해버렸다. 그런 P가 느닷없이 꽃바구니와 생일카드를 보냈다. 오후에 오피스텔로 찾아오겠다고 한다. 부상당한 수리부엉이 다큐멘터리를 찍은 남자는 작품을 조작했다는 모함을 받게 되고, 그 소문의 진원이 인간적으로 신뢰했던 박PD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다. 박PD가 오후에 같이 술이나 한잔하자고 했다.

각자 P와 박PD를 피해 부석사로 떠나지만, 어딘지 분간할 수 없는 좁은 산길에서 진창에 빠지고 마는 차. 일순간 정지되는 공간에서 남자와 여자는 ‘바람이’라는 개를 통해 느슨하지만 인간적인 관계의 결속을 경험하게 된다. (부석사)

작가는 ‘볼품 없는 것들이 오히려 빛이 났기에 나는 소설 쓰기에 매혹당했다’고 한다. 이는 통쾌하지 않은 소통으로 인한 단절 가운데서도 그가 ‘길을 내고 또 길을 내고 있는’ 까닭일 것이다.

이번 창작집에는 요절한 동료작가 채영주를 그린 ‘혼자 간 사람’을 포함해 2000년 이후 발표한 6편의 소설을 함께 묶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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