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링컨 1,2'…'준비안된 대통령' 링컨의 성공비결

  • 입력 2003년 2월 21일 17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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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1, 2/데이비드 도날드 지음 남신우 옮김/476쪽 1만5000원 살림

‘그는 굳은 신념과 결의로 초지일관 노예제 해방을 추진했고, 그로 인해 남북전쟁이 일어났다.’

위인전을 통해서만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을 접한 사람은 이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미국 워싱톤 링컨기념관에 있는 6m 높이의 링컨 동상. 링컨은 운명예정설을 믿는 캘빈교도답게 국가와 보다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그러나 역사적 인물로서의 링컨은 노예제 자체는 나쁘다고 보았지만 노예제를 즉각 폐지하는 것에는 반대했다. 그는 노예제가 있는 주의 권리는 인정해주는 대신 새로 합중국에 편입된 주에서 노예제를 금지시키면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자연히 노예제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 그는 흑인 노예들을 다시 아프리카로 돌려보내자는 비현실적 제안에 상당히 매력을 느꼈고, 대통령이 되고 난 후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남북전쟁에 대해서도 그가 ‘노예제 해방’보다 ‘연방의 보전’이라는 측면을 훨씬 중시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렇듯 이 책은 링컨이 위인전에 실린 대로의 초인(超人)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정치가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링컨 스스로 ‘미천한(humble)’이라는 수식어를 자주 썼던 것처럼, 켄터키주 촌구석에서 태어나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고 돈도 없었던 그가 대통령 자리까지 올라간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이 됐을 당시 단 한번의 연방하원의원 당선이 중앙 정치 경험의 전부인 데다 당내 정치 후원세력마저 거의 없을 정도로 그는 미 역사상 가장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이었다.

첫 조각(組閣)에서 대통령후보 경선의 라이벌이었던 윌리엄 수어드(국무장관), 샐먼 체이스(재무장관) 등을 요직에 앉히고 주마다 지역안배를 한 것도 뛰어난 용인술이라기보다는 당내 기반이 없는 풋내기 대통령의 어쩔 수 없는 정치적 고려였다. 남북전쟁 당시 동부전선에서 패전을 거듭하고 있을 때에도 서부전선에서 뛰어난 전과를 보여주던 그랜트 장군을 동부전선으로 부르지 않은 것조차 그가 차기 대통령후보로 부상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영웅적 기질과 뛰어난 배경으로 승승장구한 정치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백’ 없고 정적들의 끊임없는 험담에 시달린 데다 전쟁 교착 상태로 인해 대중적 인기도 추락하는 등 시련을 더 많이 겪은 정치가였다는 게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칭송받는 것은, 어렵고 힘든 순간을 그의 정확한 정치적 판단과 뛰어난 연설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극복해 나갔다는 데 있다.

그는 모든 일에 과감하게 앞장선 선구자적 대통령이 아니라 상황에 대응하면서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한 정치가였다. 소박한 노예반대론자에서 노예해방 선언문 발표, 그리고 완전한 노예해방에 이르기까지 그의 생각의 변천 역시 현실 인식에 따른 대응이었다.

저자는 미 국회도서관의 문서 등 방대한 자료와 퓰리처상을 두 번 수상한 역동적인 필체로 링컨의 어린 시절부터 암살까지의 인생을 재구성했다. 링컨이 생전 알지 못했거나 알 수 없었던 사실을 모두 배제한 채 그의 책 연설 편지, 그를 평가한 신문기사 등을 바탕으로 링컨 자신의 관점에서 책을 썼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대통령도 링컨과 같이 선구자가 아닌 변화발전하는 현실적 정치가인지 모른다. 링컨을 좋아해 링컨 관련 책도 펴낸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에게도 한번 일독을 권하고 싶다. 원작의 100쪽에 가까운 각종 색인을 번역본에서 빼버린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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