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기자의 건강세상]열등감과 의처증

  • 입력 2003년 2월 16일 17시 43분


코멘트
개그우먼 이경실씨는 필자와 본관(本貫)이 같다.

우리 ‘전의(全義) 이씨’ 문중(門中)에서 그녀는 ‘가문의 영광’이었다. 이런 우리 가문의 영광이 지난주 ‘가정폭력’으로 만신창이가 됐다.

일부 언론에서는 남편의 말을 빌려 이씨의 행실에 문제가 있었던 것처럼 보도했고, 여성계에서는 ‘본질을 왜곡해 가십거리로 삼지 말라’며 성명을 냈다. 필자는 여성계의 주장이 옳다고 본다. 야구방망이로 배우자를 때린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필자는 사건의 본질인 ‘가정폭력’의 뿌리에 도사린 ‘마음’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신의학에서는 가정폭력의 저변에는 의심이, 그 밑에는 열등감이 깔려 있다고 본다.

사람의 마음은 외부로부터 감당할 수 없는 자극이 들어오면 이를 여러 가지 방어무기로 해결한다. 이 중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심적인 갈등을 남에게 돌리는 것을 ‘투사(投射)’라고 한다. 무의식에 열등감이 쌓여 있으면 투사 능력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한다는 것이다.

특정한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은 이 같은 투사 능력이 비정상적으로 과도하게 발달의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편집성 인격장애’ 환자.

정도가 가벼우면 환자가 자신감을 찾기만 해도 의심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자신감은 배우자나 자녀, 동료가 따뜻하게 대하는 것 외에 명상이나 취미생활을 통해서도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증세가 심하면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

또 한 달 이상 배우자가 부정(不貞)을 저지른다는 망상(妄想)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면 ‘부정 및 질투 망상장애’일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에도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치료 자체는 쉽지 않다.

의부증, 의처증을 없애려면 개인도 노력해야 하지만 사회를 치료하는 것도 절실하다.

우리 사회는 배우자나 연인을 의심하게끔 만드는 오염된 환경으로 꽉 차 있다.

필자도 기혼자끼리 불륜을 권유하는 스팸 메일을 수시로 받고 있다. 이런 종류의 사업을 방치하는 정부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있는지 궁금하다. 필자는 또 이번 사건이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결혼과 가정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결혼은 인격이 서로 어울리는 사람끼리 해야 한다. 겉모습과 조건만 따져서는 곤란하다. 그리고 한번 결혼하면 믿어야 하고 믿음을 줘야 한다. 여기에도 정성이 필요하다.

노무현 대통령당선자 부부는 얼마 전 TV에서 “사랑보다 신뢰가 중요하다”고 했지만, 사랑과 믿음은 같은 말이 아닐까. 믿음 없는 사랑은 맹목이지, 그것을 어떻게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stein3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