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구텐베르크 혁명'…오류없는 표준 변혁 몰고와

  • 입력 2003년 2월 7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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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 혁명/존 맨 지음 남경태 옮김/405쪽 1만4500원 예지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397∼1468)가 금속활자를 이용해 성서를 ‘인쇄’하기 전까지 15세기 전반 유럽의 성서 제작은 필경사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필경사가 만드는 성서에는 한계가 있었다.

필경사 한 사람이 1주일 동안 매달린다고 해도 책 한 쪽이나 두 쪽을 적는 데 불과했기 때문이다. 1272쪽짜리 성서 주석서 한 권을 만드는 데 필경사 2명이 매달려 5년이나 걸린 예도 있다. 당시에는 얼마나 ‘아름다운’ 책을 만드느냐가 필경사의 수준을 판단하는 기준이었기 때문에 책 제작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진리의 왜곡이었다. 손으로 글을 적어나가는 데는 실수가 있게 마련이다. 이런 실수는 필사를 거듭할수록 많아졌다. 성서가 판본마다 다른 내용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늘어나는 유럽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수단이 필요했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사용한 인쇄술을 개발하고 이를 이용해 성서를 제작하기로 결심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구텐베르크는 오류가 없는 표준 성서가 유럽 시장을 석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게다가 구텐베르크의 성서는 ‘예술적인’ 면에서도 손으로 적은 성서를 능가했다. 구텐베르크가 만든 성서의 여백은 ‘황금 비례’로 나뉘었고 필경사들이 늘 난제로 생각했던 문제도 해결했다. 손으로 쓰는 성서는 아무리 신경을 써도 오른쪽 줄이 들쭉날쭉했다.

하지만 구텐베르크는 꼼꼼한 디자인으로 오른쪽 줄을 가지런히 맞췄다. 당시 성서를 구입할 만한 재력이 있는 귀족들의 취향에 맞는 고급품이었다.

구텐베르크의 사업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발명은 유럽 사회에 중대한 변혁을 가져오게 된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인쇄술에 힘입은 바 크다.

그가 내건 ‘95개의 명제’는 교황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인쇄된 덕에 유럽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95개의 명제’ 아래 결집하게 됐다. 구텐베르크는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혁명의 아버지’가 된 것이다.

영국의 역사가이면서 다큐멘터리 작가인 저자는 이 책에서 금속활자의 발명과 초기 출판의 모습을 담아냈고, 이를 통한 유럽 사회의 변화를 탐구했다.

생생한 묘사가 돋보이지만 유럽에서 세계로 눈을 돌려 설명한 부분에서는 연구가 부족한 듯 오류가 눈에 띄어 거슬린다. 저자는 한국이 1234년에 ‘상정고금예문’이라는 책을 만들 때 최초로 금속활자로 인쇄했다는 대목을 적으면서 ‘한국이 중국의 문자를 변형시켜 더 적은 문자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 점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엉뚱한 해석을 내린다.

아마도 상정고금예문이 한자가 아닌 글자(아마도 한글)로 인쇄된 것이라고 착각한 듯하다. 한글이 발명된 것은 상정고금예문이 발간된 뒤 200여년 후의 일이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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