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역사론

  • 입력 2002년 12월 27일 18시 04분


‘극단의 시대’ ‘제국의 시대’ ‘자본의 시대’ ‘혁명의 시대’ 등 4부작의 저자로 유명한 영국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역사론.

홉스봄은 첫장에서 역사가 상당부분 신화요 날조라고 도발한다.

몇해 전 인도에서 힌두교 광신자들이 아요디아의 이슬람 사원을 파괴했다. 그들은 ‘이슬람교를 믿는 무굴 정복자 바부르가 힌두교인이 신성시하는 라마 신의 탄생지에 이슬람 사원을 강제로 세웠다’는 이유를 내걸었다. 그러나 홉스봄의 연구에 따르면 누구도 19세기까지 아요디아가 라마 신의 탄생지라는 사실을 제시한 적이 없고, 이슬람 사원은 바부르 시절에 세워지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그들은 사실도 아닌 것에 분노했고 심지어 목숨을 던지기도 했다. 양귀비가 마약의 원료인 것처럼 역사는 민족주의적, 인종주의적, 근본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재료가 된다. 그럼으로써 역사는 예기치 않게 정치가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역사를 신화로 바꾸거나 날조하려는 이러저러한 시도들은 단지 나쁜 지적 농담으로 그치지 않는다. 결국 이것들은 교과서에 들어갈 내용을 결정한다. 신화와 날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교육받은 계층, 즉 교사 성직자 교수 저널리스트들과 텔레비전 라디오 프로그램의 제작자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대학에 다닌 적이 있다. 역사는 조상 대대로 물려 내려온 기억이나 집단적 전통이 아니다. 역사는 사람들이 성직자 교사 역사집필자 잡지편집자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배운 것이다.

신화와 날조로서의 역사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홉스봄은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본다. 아일랜드가 독립을 쟁취한 지 반세기 후부터 아일랜드 역사가들은 더 이상 민족해방운동의 신화적 관점에서 역사를 쓰지 않기 시작했다. 이것은 여전히 정치적 의미와 위험을 지닌 문제다. 오늘날에도 아일랜드에는 페니언(Fenian)단에서부터 아일랜드공화군(IRA)까지 낡은 신화의 이름을 빌어 총과 폭탄을 가지고 투쟁하고 있는 집단이 광범위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조국의 위대한 고난과 발전의 역사’에서 한발 물러설 수 있는 새로운 세대들이 성장한다는 사실은 역사가에게 희망의 표시다.

인기있는 역사가들이여! 조심하라. 역사가는 신화, 특히 민족 신화의 형성에 저항해야 한다.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의 창건자인 토마스 마사리크는 대부분의 체코 민족 신화들이 근거하고 있는 중세 필사본들이 위조되었다는 사실을 주저없이 입증했고 따라서 정치에 입문했을 때 인기가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반드시 행해져야 하고 역사가가 될 사람은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

홉스봄은 이렇게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와는 다른 방식으로 역사에 대해 말한다. 카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와 미래 사이의 대화로 보았다. 홉스봄은 상대적으로 미래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 책이 작년 독일에서 번역될 때 제목으로 사용된 ‘미래는 얼마나 많은 역사를 필요로 하나’는 홉스봄의 이러한 관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원제 ‘On History’(1997).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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