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모차르트 평전, 모차르트-혁명의 서곡

  • 입력 2002년 12월 27일 17시 54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는 사라졌고 그의 물리 화학적 흔적은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그의 정신적 산물들은 끊임없이 감상되고 연구되며 재해석되고, 소진됨이 없이 더욱 풍성해진다. 가위 쿤데라적 ‘불멸’(Immortal)이자 닐센적 ‘불멸’(Inextinguishable)이다.

그의 브랜드 가치는 ‘오스트리아를 통째로 살 수 있을 정도’(솔레르스)이고, 그의 이름은 호텔 승강기 배경음악에서 유아교육까지 ‘시효 없는 산업’(〃)을 대표한다. 그를 다룬 책의 목록도 오페라 ‘돈 조반니’에서 레포렐로가 읊어대는 각국 여인의 카탈로그만큼이나 길다. 국내에 처음 선보인 두 권의 책이 어떤 시각을 보태줄 수 있을까.

솔레르스는 1961년 소설 ‘공원’으로 메디치상을 수상했고 에세이 전기 서평을 넘나들며 전방위적 작업을 선보여온 저술가. 지난해 발표한 ‘모차르트 평전’에서 그는 ‘니체적 수사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한, 잠언 스타일의 던져놓는 듯한 글쓰기를 시도한다. 연구 문헌을 동원한 논증적 평전과는 거리가 멀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저자의 직관 중 단연 빛나는 부분은 책의 앞부분에 놓인다. “모차르트야말로 신의 아들로서, 우리는 그를 비참한 가운데 죽게 내버려두었다.(…) 신은 우리에게 그를 보내주었다가 다시 데려갔다. 우리는 그를 감당할 자격이 없었지만, 그는 우리를 다른 세계로 데려간다.”

요컨대, 서구인의 심층심리 속에서 모차르트는 2000년 전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사나이와 바로 겹쳐지는 것이다. 그의 중간이름(Amadeus·신의 사랑)부터가 ‘신에 의해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은 아이’임을 암시한다. 그도 대중으로부터 버림받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연극과 영화로 만들어진 ‘아마데우스’를 따르자면, 우리는 그의 비범을 알아보지 못함으로써 죄를 입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부분마다의 탁월한 직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아쉬운 점도 남긴다. 쉼표와 관계사(關係詞)로 겹겹이 꼬인 문장구조는 역자의 ‘사슬풀기’를 거친 뒤에도 읽기에 간단치 않다. 문헌의 엄밀성에도 문제가 있다. 인용된 서한 중 부친에게 보낸 ‘잠자리에 들 때마다 다음날 아침 살아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라는 편지는 오늘날 그 진본 여부를 의심받고 있다. 나머지 편지도 의심을 피해갈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모차르트-혁명의 서곡’을 쓴 맥가는 영국 좌파 매체에 다양한 주제의 글을 기고하고 있는 ‘레드’ 저널리스트. 정치적 성향이 그렇듯 이 책에서도 당대 사회의 혁신적 기운을 수용하고 있는 진보적 예술가로 모차르트의 모습을 그려낸다. 새로울 것 없는 주제이지만, 국내에 소개된 책 중에서는 가장 종합적이고 체계 있게 모차르트의 ‘진보성’을 다루고 있다.

이 책 역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모차르트 시대의 선구를 이루는 ‘갈랑(gallant) 양식’은 바로크 시대의 폴리포니(多聲音樂)와 단순 대비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모차르트 시대에 오스트리아가 헝가리와 이중제국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설명도 올바르지 않다. ‘이중제국’이 성립된 것은 1867년이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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