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정은/일그러진 ´벤처정신´

  • 입력 2002년 12월 5일 17시 58분


“일부 닷컴기업 경영자들이 인수합병(M&A) 등의 과정에서 자기 배만 채웠다. 이와 비교할 때 프리챌은 모범적인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업체인 프리챌의 전제완 사장이 지난해 4월 대정크린(현 프리챌홀딩스)과 회사를 합칠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전 사장은 4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 혐의(횡령·배임)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그는 작년 합병 당시 기업의 자유와 도전 정신을 강조하며 “프리챌이 야후를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큰소리쳤다. 건실한 기업으로 키워 세계로 진출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러나 전 사장의 호언장담은 1년6개월 만에 ‘부도’가 나고 말았다. 시작부터 진실이 아니었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할 것 같다.

검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 사장은 그 시기에 이미 회사돈 22억원을 횡령하고 이를 직원이 빌려간 것처럼 회계장부를 꾸미고 있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 2000년 4월에는 6000만원 횡령, 같은 해 12월 39억원 횡령, 2001년 3월에는 40억원 횡령….

구속영장에 따르면 이렇게 횡령한 돈의 액수만 138억원이다. 1월 유상증자 과정에서의 80억원대 주금 가장납입 혐의에는 지주회사인 프리챌홀딩스와의 복잡한 채무 관계까지 얽혀있다.

전 사장은 주금 가장납입과 관련해 “프리챌홀딩스에 대한 빚을 출자전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벤처업계는 전 사장의 형사처벌을 예상 밖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올해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잇따라 처벌된 데다 최근 새롬기술 오상수 사장의 구속으로 일종의 ‘내성’마저 생겨버린 분위기다.

“장기침체 속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회사를 운영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동정론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기업인의 윤리와 정도(正道)를 지키는 것이 회사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는 사실 또한 모두가 알고 있다. 이번 프리챌 사건은 특히 벤처기업인에게 초심(初心)을 지키라는 마지막 경고가 아닐까.

이정은기자 경제부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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