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선과 악의 학문적 분석 ´선과 악´

  • 입력 2002년 11월 29일 17시 05분


◇선과 악/안네마리 피퍼 지음 이재황 옮김/208쪽 1만원 이끌리오

‘선은 좋고 악은 나쁘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 같지만, 실상 선한 일보다 악한 일이 더 많이 눈에 뜨이고 선한 행위보다 악한 행위가 더 흥미를 끄는 게 현실이다.

스위스 바젤대 철학과 교수인 저자는 “선을 행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선을 행하려면 각자의 개성을 무시하고 누구에게나 두루 적용되는 공동체의 규칙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것은 선이 아니라 악이다. ‘악을 원하는 자’는 다른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 따위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주변 세계와 사람들을 자신의 별난 관심과 취향의 실험 대상으로 이용하는 ‘과격한 개인주의자’다.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될 만하다.

그래서인지 선과 악의 뿌리를 해명하려는 이 책도 선보다는 악에 더 관심이 많다. 악을 해명할 수 있다면 선은 저절로 드러난다고 보기 때문인 듯하다.

저자는 언어학 심리학 사회학 신학 철학 자연과학 등 각 분야의 관점과 해석들을 검토하며 선과 악의 유래와 그 다양한 양상을 이야기한다.

유전학 행태학 사회생물학에 따르면 선과 악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자연적 조건, 특히 유전자의 생존전략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심리학이나 사회학에 따르면 선과 악의 뿌리는 사회적 환경과 사회의 억압적 구조에 있다.

신학의 입장은 또 다르다. 그에 따르면 선의 원천은 악이고 악의 원천은 인간 자신이다. 다시 말해 악의 근원은 신의 금지명령을 어긴 ‘첫 인간’들의 원죄에 있다.

그렇다면 인간 자신은 악에 대해 책임이 없는 것일까? 독일의 철학자 칸트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선악 선택의 자유가 있다. 그 자신의 자유를 올바르게 사용하면 선한 인간이 되고 잘못 사용하면 악한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히틀러 앞에서 충성하며 그 명령에 따라 악을 행한 사람들은 부자유를 선택하는 자유를 행사한 셈이다.

현란한 이론적 분석에 지칠 즈음, 저자는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버러스 프레드릭 스키너의 ‘월든 투’ 등 흥미 있는 소설을 예로 들며 선악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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