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의원 없어 국회 못 열다니

  • 입력 2002년 11월 8일 18시 36분


어제 사실상 끝난 올해 정기국회는 ‘이런 국회가 왜 필요한지’ 하는 심각한 의문을 다시 한번 던져 주었다. 국민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법안들이 진지한 토의 없이 벼락치기로 통과되는가 하면 내년 예산안은 나눠먹기식으로 제멋대로 처리됐다.

이 과정에서 의결 정족수가 부족해 한때 본회의가 중단되는 소동까지 빚어졌으니 그런 소극(笑劇)이 없다. 사회봉을 잡은 국회부의장이 일사천리로 법안을 처리해 나가다가 의석이 텅 빈 것을 뒤늦게 알고 의원들을 찾기에 바빴다니 마치 수업받기 싫어하는 불량학생들을 보는 느낌이다. 도대체 의원이 없어 국회를 못 열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얘기인가.

엊그제 이틀간 본회의에서 통과된 법안 등 안건은 모두 150여건으로 3분에 한 건꼴로 처리됐다니 법 조항을 읽어보지 못한 의원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국회의원이 가장 기본적인 책무라 할 법안심의조차 이처럼 게을리하고서 과연 국민대표라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더욱이 처리된 법안 중에는 대선 분위기에 편승한 이익집단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해 제정하거나 내용이 변질된 것들이 적지 않아 시행과정에서 부작용과 후유증이 우려되고 있다. 예산안도 마찬가지다. 졸속 편법심의에 이어 막판에는 삭감을 통해 확보된 재원의 대부분을 대선을 의식한 민원성 선심성 예산 증액으로 돌리고, 여야간 ‘영호남 교차 묵인’까지 있었다니 역겨울 뿐이다.

이는 여야가 모든 것을 대선에만 초점을 맞춰 당력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국정이 심각하게 흐트러진 정권 말에 국정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통과된 부실한 법안과 예산안은 고스란히 다음 정부의 짐이 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은 원내다수당으로서, 민주당은 집권세력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잘못된 법안을 바로잡을 수 있는 방안도 찾아보아야 한다. 국회가 대선의 제물(祭物)이 되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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