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우리 눈높이로 본 외교사 ´외교사란 무엇인가´

  • 입력 2002년 9월 27일 17시 16분


◇외교사란 무엇인가/김용구 지음/185쪽 1만5000원 도서출판 원

이 책은 지난 8월말로 정년퇴임한 전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의 김용구 교수가 퇴임강연을 위해 특별히 저술한 것이다. 외교사라고 하는 과목이 고시과목이기 때문에 사회적 수요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 내용의 대부분은 서양 강대국들 사이에 일어났던 외교분쟁과 해결 과정에 대한 서양적 표준 해설이 중심이었고 이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으로 일관했었다.

서울대에서 30년간 외교사 과목을 강의해온 김용구 교수가 이 책을 굳이 새롭게 저술하고 또 그것을 퇴임강연 내용으로 삼은 것은 사회과학 보다 좁게는 국제정치학에서의 무비판적 학문 행위가 갖는 해악 또는 자기기만성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보내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책에서는 김 용구 교수가 그동안 단행본으로 발간했던 세계외교사 또는 한국외교사 관련 서적에서 지적된 몇 가지 중요한 기초적 문제들이 별도로 정리되어 동료 학자들 뿐 아니라 외교사 그 자체에는 관심 없을 일반인들에게도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몇 가지 철학적 문제들이 토의되고 있다.

이러한 몇 가지 기초적 문제들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은 외교사라는 학문 속에 녹아들어 있는 구미 중심적 사고방식의 탈피이다. 외교사 연구는 구미에서 높은 학문적 수준을 유지하면서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외교사 연구를 학생들에게 여러 해에 걸쳐 강의해오면서 김 용구 교수가 뼈저리게 느낀 점은 그러한 수준 높은 연구 속에서 한국과 같은 중소국의 위치는 거의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과연 그 높은 수준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깊은 자의식이 외교사라는 학문에 대한 본원적인 성찰을 자극한 것이다.

김 교수에게 있어서 서양 제국주의에 상응하는 구미의 독특한 역사인식 및 역사기술에서 문제의 핵심이 발견된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은 구미인이 아닌 중소국 사람들 스스로가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변지역의 지식인들은 나름대로의 오지(奧地) 사고방식에 젖어있어 그러한 극복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견된다. 구미 학문의 높은 수준에 감복하여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지 못 한다면 식민지적 사고방식은 그대로 전승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외교사를 단순히 ‘객관적’ 자료만 갖고 될 수 있다는 순진한 사고를 극복하는 작업이 결국 올바른 외교사 연구의 시작이라는 점이 이 책의 핵심적 주장이 되는 것이며 바로 그러한 뜻에서 책제목이 ‘외교사란 무엇인가’라는 일견 평이하게 붙어있게 되었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외교사의 연구가 문명사적인 자기의식을 바탕으로 해야한다는 논지를 결론으로 끌어내기 위한 목적에서 그 제목이 주어진 것임을 알 필요가 있을 것이다.

외교사 연구의 주된 대상은 개별 국가이다. 그러나 김용구 교수는 개별 국가의 행동 그 자체가 아니라 행동 속에 깔려있는 문명권적 정신구조를 파악하는 작업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아마도 이 점이 김교수가 말하는 외교사 연구의 방법적 출발점이 된다. 이 책은 총론적인 서술이기 때문에 그러한 방법이 구체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이어질 외교사 저술작업을 통해 더 자세히 밝혀질 것이다. 이 책에서는 유교권 세계에 대한 서양 국제법의 전래와 ‘예(禮)’ 개념의 충돌을 통해서 이 방법이 지향하는 바를 알 수 있지만 이 방법을 둘러싼 흥미있는 토론이 학계에서 더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적지 않다.

박상섭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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