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화경/마하인간

  • 입력 2002년 9월 16일 18시 07분


1936년 8월 1일 베를린 올림픽스타디움. 본부석 한가운데 앉은 히틀러는 곧 나올 금메달 소식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과시하기 위해 개최한 올림픽이다. 게다가 ‘육상의 꽃’으로 불리는 남자 100m 경기야말로 독일이 자랑하는 종목 아닌가.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10만여 관중, 여기에 사상 첫 TV중계를 지켜볼 사람들까지 계산하면 우승 효과는 그만이었다. 히틀러의 이 꿈은 미국의 한 흑인선수에 의해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사상 가장 위대한 육상선수로 불리는 제시 오언스 얘기다.

▷10초2의 기록도 당시로선 경이적이었다. 그러나 오언스의 이 ‘대기록’이 요즘은 ‘지역예선’에서조차 명함을 못 내밀 수준이 되어 버렸다. 인간 능력의 한계라던 10초 벽을 돌파한 게 1968년, 이어 1991년엔 9초90, 1999년엔 9초80의 벽이 깨졌다. 엊그제 새로 세계기록을 세운 미국의 팀 몽고메리는 9초78로 오언스보다 0.42초 빠르다. “66년 동안 겨우 0.42초?” 할지 모르지만 100분의 1초 차로 순위가 갈리는 것이 100m 경기다. 몽고메리가 골인할 때 5m 가까이 뒤져 있는 셈이니 오언스가 이 기록으로 지금 올림픽에 나가면 꼴찌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오언스의 기록을 우습게 볼 수는 없다. 최근 기록 단축의 상당 부분은 스포츠 과학에 기인했기 때문이다. 나이키가 만든 ‘스위프트복’은 바람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얼굴과 손가락만 밖으로 나오도록 되어 있다. 다섯 가지 섬유로 짠 이 신소재 유니폼을 입어 본 선수들은 “옷이 아니라 피부 같다”고 감탄한다. 100m 경기에서 단 5㎝ 먼저 골인할 운동화를 만드느라 스포츠 용품사들은 피나는 경쟁을 벌인다. 짝발에 평발인 이봉주가 세계 마라톤을 제패한 것도 특수 고안된 신발 덕이었다. 스포츠에서도 과학의 힘은 이렇게 놀랍다.

▷100m 기록의 인간 한계는 얼마일까. 몇 년 전 일본에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역대 남자 선수들의 장점만을 뽑아 시뮬레이션해 보니 9초50이 나왔다는 것이다. 미국의 라이더 박사는 지난 100년간의 기록단축 추이를 근거로 이보다 더 빠른 9초34를 한계로 제시하고 있다.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처럼 앞으로도 새로운 ‘마하인간’의 탄생은 거듭될 것이다. 그러나 그 끝이 어디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아무리 빠른 ‘마하인간’도 결코 치타가 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최화경 논설위원 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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