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공연계 명암]화려한 뮤지컬 무대에 정통연극이 죽어간다

  • 입력 2002년 9월 3일 18시 22분


'오페라의 유령' '델라구아다' '지하철 1호선'(위에서부터)등 화려한 쇼를 방불케 하는 뮤지컬의 전성시대를 맞고있다. 반면 대학로 연극은 창작력 부재로 부진을 거듭하고 있다.

'오페라의 유령' '델라구아다' '지하철 1호선'(위에서부터)등 화려한 쇼를 방불케 하는 뮤지컬의 전성시대를 맞고있다. 반면 대학로 연극은 창작력 부재로 부진을 거듭하고 있다.

《‘뮤지컬은 뜨고, 연극은 지고….’

국내 공연계의 현주소다. 요즘 500∼3000석 규모의 중대형극장에서는 ‘델라구아다’ ‘갬블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풋루스’ 등 뮤지컬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장기 공연중인 ‘난타’를 비롯 ‘UFO’ ‘칼라바 쇼’ ‘블루 사이공’ 등 토종 창작 뮤지컬도 연이어 막을 올리고 있다. 반면 연극의 메카인 대학로는 ‘조용’하다. 》

■뮤지컬 붐, 그 속의 거품

춤 노래 연기를 아우른 뮤지컬은 감각적인 쇼를 선호하는 젊은 세대의 코드와 잘 들어맞는다. ‘웨스트사이드…’처럼 매년 공연되는 작품은 중장년층 관객까지 흡수하고 있다. 뮤지컬 공연마다 편차는 있어도 ‘최소한 기본은 한다’는 게 공연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오페라의 유령’이 190억원 매출에 20억원의 순이익을 내는 등 뮤지컬이 문화산업으로 급부상하면서 창투사 자금도 따라 움직이고 있다. 한 창투사 관계자는 “뮤지컬 공연관련 서류들이 부쩍 늘었는데 특이한 점은 하나 같이 주인공은 남경주 최정원, 공연장은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으로 돼있다”며 “거창한 기획서로 일단 돈을 끌어들이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수십억 짜리 블록버스터 뮤지컬의 기획자는 창투사 원금 회수와 수익 창출의 이중 부담을 떠안는다. 때문에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등 ‘한 번에 몇 천명’을 동원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빠른 시간 내에 승부를 걸고자 한다.

빅히트를 거둔 뮤지컬은 브로드웨이 작품이 주류를 이룬다. 미국과 비슷한 시간대에 선진 뮤지컬을 만난다는 점은 관객 입장에서 매력적이다. ‘오페라의 유령’처럼 공연 전 3개월간 사전 연습을 거치는 시스템도 도입됐다. 하지만 외국 스태프진은 국내 공연을 끝내면 그뿐, 공연에 대한 노하우에 관해선 우리가 얻는 것은 거의 없는 실정.

‘지하철 1호선’을 연출한 김민기 ‘학전’ 대표는 “일본처럼 브로드웨이 스태프와 사전 계약을 맺고 다양한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해선 계약할 때부터 국내 스태프진이 참여해 선진 기술을 배운다는 조항을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극, 부활 해법은 없나

연극은 뮤지컬처럼 화려하지 않고 TV 드라마처럼 극적 재미가 쏠쏠하지도 않다. 때문에 최근 연극계에서는 코믹극이 ‘대안’처럼 등장하고 있다. 1년 넘게 장기공연 중인 가족극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쟁이’를 제외한 연극 ‘행복한 가족’ ‘이발사 박봉구’ 등은 코믹극으로 재미를 본 작품. 하지만 공연 관계자들은 코믹극과 연극은 다소 차이가 있다는 입장이다.

한해 무대에 오르는 공연물은 대략 200여편으로 연극이 80%, 뮤지컬이 20%를 차지한다. 제작비로 봤을 때 연극이 소극장 3000만원, 대극장 8000만∼1억원 정도이고 뮤지컬은 소극장 2억원, 대극장 5억∼10억원 수준이다. 그러나 작품수와 흥행성적 비율은 정반대로 나타난다.

공연 기획사 ‘모아’의 남기웅 대표는 장기공연할 수 있는 공간 마련이 연극 활성화의 대안이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대부분 극장들은 1년전에 대관을 마감한다. 그나마 공들여 제작한 세트는 2주 공연하면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폐기된다. 자체 공연장이 있다면 이러한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미국 브로드웨이에 오르는 연극작품은 대부분 오프 브로드웨이의 소극장에서 시작된다. 6개월∼1년에 걸친 연습과 워크숍 등을 통해 투자자를 모은다. 여기서 성공하면 사전 예약을 받아 브로드웨이로 입성한다. 공연은 예약 관객이 90% 이상, 매표 수익이 전체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해 자생력을 갖게 된다.

이처럼 작은 무대에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투자자와 관객의 검증을 받아 큰 극장으로 옮겨가는 방식이 연극이 살아날 수 있는 방법으로 보인다.

김윤철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는 “뮤지컬 붐은 세계적인 추세지만 우리 시대 젊은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창작 뮤지컬 개발도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연극 침체는 삶에 대한 진실을 얘기함으로써 감동을 주는 연극의 기본 기능을 무시해왔기 때문”이라며 “시대를 뚫어보는 유능한 극작가의 양성이 급선무”라고 덧붙였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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