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서두르다 한미공조도 깼다

  • 입력 2002년 7월 3일 18시 39분


서해교전 사태로 권위를 손상당한 정부가 외교에서도 극심한 난맥상을 보여주고 있다. 임성준(任晟準) 대통령외교안보수석 등 외교를 책임지고 있는 정부 당국자들은 북한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예정대로 대북 특사를 파견할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2일 미국 국무부 대변인의 고위급 특사 방북 철회 발표는 이번 사태를 보는 한미 양국의 시각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불과 며칠만에 드러날 판단실수로 정부신뢰를 손상시킨 외교 책임자들의 언행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대통령외교안보수석이 무슨 근거로 중대한 외교현안에 대해 그토록 경솔한 발언을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사태의 의미를 축소하려는 저의에서 비롯된 것인지, 무능에서 기인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떤 경우라도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정상회담 자리를 활용해 냉정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일본정부를 설득할 수는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장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미국이 그렇게 쉽게 우리 주장에 동조하리라고 기대한 자체가 경솔한 짓이었다. 결국 우리 정부는 교전 사태의 심각성을 무시하고 서두르다가 북한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금과옥조처럼 꺼내던 한미공조마저 깨뜨리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한미 양국이 서로 다른 말을 하고 말았으니 당분간 양국이 한반도의 평화와 긴장완화를 위해 긴밀히 공조하고 있다는 말도 믿기 어렵게 됐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일방주의라는 비판을 무릅쓰면서 북한 등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국가에 대해 강경책을 고수하고 있는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정부가 곤경을 자초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게도 구럭도 놓치게 된다. 정부는 북-미대화에 나서도록 미국을 설득하기에 앞서 무력도발을 한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읽고 올바로 대응하는 것이 먼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판단을 잘못한 외교 책임자들에 대한 문책도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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