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고요한 아침의 나라 과거로의 여행 '은자의 나라'

  • 입력 2002년 6월 14일 18시 46분


◇ 은자의 나라/176쪽 9만8000원 시사영어사/

‘은자(隱者)의 나라(The Hermit Nation).’ 110여년전 한국을 찾은 ‘파란 눈’의 기자들은 한국을 이렇게 불렀다. 근대자본주의로의 변화에 박차를 가하는 역동적인 세계의 움직임 속에서 ‘고요히’ 살아가는 한 민족의 삶이 너무나 안온해 보였던 것일까.

다큐멘터리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기자들이 1890년부터 1988년까지 20여차례에 걸쳐 한국을 취재하면서 사진으로 남긴 구한말 한국인의 생생한 생활을 책으로 묶였다.

사진자료 300여장 중 ‘희귀성’을 기준으로 자료 가치가 높은 사진 140여장을 골라 실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수록된 사진과 당시 잡지에 실렸던 사진설명을 △옛 한국인들 △한국의 산하와 거리 △농촌과 어촌 △한국의 문화 유산 △전통 문화 등 다섯 영역으로 분류, 19∼20세기 서양인이 바라본 한국을 보여주고 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딛고 근대화를 이뤄가는 과정도 글과 사진으로 생동감있게 재현하고 있다.

내놓고… 감추고
1910년에 서울에서 촬영한 ‘한국의 근로 계층 여인들’(왼쪽)과 ‘서울의 중류층 여성들은 외출복으로 긴 외투(장옷)를 베일처럼 머리 위로 뒤집어 쓴다’고 설명한 1919년의 사진. [사진제공=YBM Si-sa]

‘은자의 나라’의 온갖 풍물이 한세기 전 서양인의 눈 속에서 거치게 되는 ‘분석과정’은 오늘날 우리가 바라보기에도 무척 흥미롭다. 상투는 ‘긴 머리를 사리 모양으로 머리 위에 틀어 얹은 것’으로, 양반들이 신은 버선은 ‘천 스타킹’으로, 갓은 ‘파리잡이 통’에 비유된다. ‘남정네들의 음탕한 시선을 가리기 위해’ 흰 천으로 머리와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여자들처럼 ‘남자들이 부채를 들고 다니는 목적도 여인들의 시선을 가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된다.

당시의 사회상을 대표한다기 보다는 외국인에게 흥미를 끌 만한 내용들이 주로 렌즈에 잡혔지만, 이 사진들은 격동의 한 세기를 거치며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상기시켜주는 좋은 도구가 된다.

‘우리가 옛 사진에 감동을 받는 것은 그 사진들이 시대를 반영하기 목격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 실린 사진들을 들쳐 보노라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의 어머니가 사시던 고향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훈훈해진다.’(책을 마치고…)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 47세 총각과 11세 유부남

어른과 아이:오른쪽의 ‘어른(기혼자)’은 11세이고, 왼쪽에 서 있는 ‘아이(미혼자)’는 47세다.(1919년)

▷ “하나도 안무거워요”

옹기장수가 항아리를 한 짐 짊어지고 장에 가고 있다. (1910년 서울)

◁ 초가지붕… 아궁이… 장독

명절을 맞아 비단옷 차림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시골 어린이들:대부분의 한국 농가처럼 이 집도 볏짚으로 이엉을 엮은 다음, 바람에도 견딜 수 있도록 아래쪽을 새끼로 맨 초가지붕이다. 곡식과 간장은 커다란 독(사진에서 왼쪽)에 저장된다. 검게 그을린 구멍(오른쪽 아래)은 아궁이의 입구 부분이다. (1950년·대구)

▷ 1945년 한국은행앞

일본은 서울 중심가의 모습을 통해 자신들이 이룩한 한국의 ‘발전’상을 선전하고 있다. 오른쪽에 ‘기린 맥주’ 등 일본어로 쓴 간판이 보인다. (1945년·서울)

△ 惡靈을 막는 금강산 장승

길 옆의 장승 두 개는 악령이 지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1933년·금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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