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승련/외환은행의 편법

  • 입력 2002년 5월 8일 18시 25분


지난주 외환은행 각 지점장은 5만명에 가까운 신탁상품 고객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

“고객께서 맡긴 돈을 하이닉스반도체의 회사채에 투자했다가 손실이 생겼다. 남아 있는 원리금으로 정기예금에 가입하면 시중금리보다 4%포인트나 높은 연리 9.2%를 적용해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6일 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고객은 투자 결과를 감수한다”는 실적배당 상품의 대원칙을 훼손한 결정이란 비난이 잇따랐다. 외환위기 이후 가까스로 정착시켜 온 투자원칙을 거스르는 반(反)시장적 결정이란 지적도 나왔다.

은행 측은 “고객들에게 투자원칙을 설명해도 먹혀들지 않는다” “이러다가 오랜 고객이 떠나면 어떻게 하느냐”고 항변했다.

논란 끝에 공은 금융당국으로 넘어갔다. 7일 금융감독위원회는 마라톤 회의를 거듭했지만 결론을 못 내리고 “10일 열릴 금감위에서 (외부인사의 견해를 반영해) 논의키로 했다”고 일단 결정을 미뤘다.

따져보자. 외환은행은 신탁상품 고객이 맡긴 돈 8000억원 중 600억원으로 하이닉스 회사채를 샀고 그 가운데 300억원을 손해봤다. 고객이 정기예금에 가입하면 300억원 정도를 이자로 얹어 보전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은행의 이익 즉, 주주의 이익은 300억원만큼 줄어들게 된다. 왜 한국은행 수출입은행 독일코메르츠방크 소액주주 등 외환은행 주주의 몫을 신탁고객에게 나눠줘야 할까. 신탁고객의 수가 많고 목소리가 커 은행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인가.

외환은행은 ‘고객 불만’을 이유로 원칙을 훼손해선 안 된다. 이해하려 들지 않는 고객에겐 몇 번이라도 실적배당 원칙을 설명해야 한다.

고통스럽지만 원칙 지키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 제2, 제3의 원칙 훼손의 전례를 만들 뿐이다.

훗날 비슷한 일이 있을 때마다 “2002년 봄에는 편법을 동원해 해결해줬지 않느냐”고 억지를 부린다면 누가 나서서 설득할 수 있을까.

김승련기자 경제부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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