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차두리가 골 넣던 날…

  • 입력 2002년 4월 24일 14시 24분


▼열차표…

경기 며칠 전부터 속을 좀 태웠다. 봄놀이 가는 사람들 때문이었을까? 주말 열차표가 모두 바닥 났다. 개인 사정상 토요일 오전 출발은 불가능했고, 직접 차를 몰고 내려간다거나 버스를 이용하는 것은 아예 포기하기로 했다. 그 동안의 경험상 오전 10시 이후에 출발해서는 저녁 7시 경기 시간에 맞추는 것이 굉장히 어렵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 된다구? 아쉽게도 본인은 수년전 비행기 사고를 몸으로 경험한 적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중국 민항기 추락 사건까지 있었다. 비행기는 아예 처음부터 대상이 아니었다. (당신들도 함 당해보기 바란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청룡열차 100배의 스릴을 맛볼 수 있게 된다!)

최후로 택한 방법! 인터넷에서 열차 예약 화면을 계속 업데이트 하면서 반납되는 예매표를 기다리는 것이다. 매우 지루하고 오랜 시간을 요구하는 작업이었지만, 약 반나절 동안의 노력 끝에 오후 1시에 출발하는 열차표를 구할 수 있었다.

됐다! 가자, 대구로!

▼동대구역.

먼저 경기장에 도착해 있는 사람들이 택시를 이용하라고 충고한다. 가장 빨리 도착할 수 있으며, 경기장 입구까지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 승용차는 경기장에서 2km 이상 떨어진 곳까지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택시를 이용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너무 멀고, 차도 막히고, 나올 때는 빈차라면서 외면하는 택시 몇 대를 보내고서야 어느 맘 좋은 아저씨를 만날 수 있었다.

“와요? 택시 안간다카는교? 그라모 되나, 월드컵도 하는데!”

“축구 볼라꼬 여까지 왔노?”

“대구는 야구 도시라가… 축구팀도 만든다카드만 잘 안되고…”

오랫만에 듣는 경상도 아저씨 특유의 느긋하고 어눌한 말투와 함께 생각보다 훨씬 편안하고 빠른 시간에 경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기장 앞.

생각처럼 인산인해를 이루지는 않았지만 꽤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월드컵 리허설로 치르는 경기라서 그런지 늘상 장사진을 치곤 하던 노점상들은 눈에 띄지 않았고, 곳곳에 경찰과 자원봉사 인력이 보일 뿐이었다.

붉은악마들도 몇 시간 전부터 진을 치고 있었다. 제 때에 도착하지 않는 회원들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고, 응원 준비와 기타 행사 협조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경기 후에 있을 콘서트 장소 때문에 한바탕, 경찰청과 함께 하는 안티 훌리건 운동 때문에 한바탕, 모 방송국의 취재 때문에 한바탕… 소란과 아우성,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틈에서, 몇몇은 최후에 도착하는 회원들에게 입장권을 전달하기 위하여 경기장 밖에 남기로 했다. 좌충우돌 하는 사이에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다. 경기가 시작된 모양이다. 결국은 경기가 시작되고 약 10분쯤 되어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

▼씨바스런 경기장.

처음 경험하는 대구 월드컵 경기장. 늘 위치하는 골대 뒤 그 자리. 그런데… 이건 해도 너무한다. 축구 전용구장이 아닌 종합 경기장이라는 것도 상당히 쒸바스럽지만, 그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 용서해 주기로 하자. 문제는 경기장과 스탠드의 해발고도(?)가 똑같다는 사실! 이른바 '눈높이 경기장'이었다. 선수들과 같은 눈 높이로 골대 뒤쪽에서 경기를 보기도 힘들지만, 그나마도 광고판(A-보드)이 내 시야를 가려 버린다. 경기장에 그어진 수 많은 선(Line)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거리감각도 없다. 김병지의 골 킥이 떨어진 곳이 우리 진영인지 상대 진영인지 통 모르겠다... 결국은 반대편에 설치된 졸라게 비싸고 화려해 보이는 전광판으로 경기를 보게 되었다.

소위 ‘시야 장애석’이라는 곳이었다. FIFA 실사 결과, 관람에 지장이 있기 때문에 월드컵 때는 정상적으로 티켓을 팔 수 없다는 판정을 받은 좌석들이었다. 대구 경기장에도 여러 곳이 이러한 시야 장애석 판정을 받는 바람에 사석이 되었지만, 다른 경기장도 그런 문제가 있는 모양이었다. 왜 우리는 늘 이런 문제를 만들면서 살아가는 것일까… 동대문 운동장에도 없는 시야 장애석이 왜 그렇게 비싸고 웅장한 경기장에 있는지 모르겠다.

▼오우~, 닥터 차!

그래도 경기는 잘만 굴러간다. 관중들은 환호하고 선수들의 몸 놀림도 가벼웠다. 간만에 등장한 최태욱의 오른쪽 공격이 볼만했다. 전에 없이 많이 뛰면서 수비에도 활발하게 가담하는 안정환도 눈에 띄었다. 서로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지만, 우리 선수들은 이미 경기를 압도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은퇴했지만, NBA의 전설적인 농구 선수 줄리어스 어빙은 ‘농구박사’라는 의미로 ‘닥터’라는 애칭을 붙여줬다던가? 그런데, 우리 팀에는 아예 등판에다가 ‘닥터(Dr)’라고 쓰고 뛰는 놈이 있다.

차박사(DR CHA)… 그가 드디어 골을 넣었다. 축구 선수가, 그것도 공격수가 열 두 경기만에 골을 넣은 것이 뭐 그리 호들갑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지만, 그의 골은 분명히 의미 있는 골이었다. 다른 어떤 선수의 득점 보다도 많은 박수를 받았으며, 그 순간 사람들은 그의 아버지보다 멋진 차두리를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으로 다음날 각 스포츠 신문의 헤드라인은 확정!.

후반전에도 차박사는 도움 1개를 추가했다. 전반전의 골 보다도 훨씬 멋진 어시스트였다. 그래… 바로 그거야… 빠른 날개를 이용한 순간적인 돌파! 더구나 후반 중반 이후에 그토록 경쾌한 패스웍과 속도감 있는 돌파, 그리고 득점까지 올릴 수 있다니! 최태욱-차두리. 오늘은 두 놈이 날개를 달고 뛰는 날인 모양이다.

▼Korea Team Fighting!

붉은악마 맞은편에는 약 1천명 규모의 KTF 응원단이 자리를 잡았다. 놀라운 규모다. 하긴 경기 스폰서 자체가 KTF였으니 놀랄 일도 아니지만, 반대편의 붉은악마가 약 3천명 수준이었던 점과 비교한다면 매우 놀랄만한 숫자다. 마치 붉은악마와 경쟁이라도 하듯이… 아쉽다! 따로 자리를 잡고 따로 응원에 열중하는 붉은악마와 KTF. 그리고, 경기 후에는 바로 옆에서 서로 다른 행사와 콘서트를 해야 하는 둘.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는 것은 같겠지만… 양쪽 골대 뒤편에 있던 둘은 분명히 일정부분에서는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무리들이었던 것이다. 월드컵 때도 1천명의 또 다른 붉은악마들이 ‘코리아 팀 파이팅’을 외칠 것인지… 쩝!

▼다음날, 젠장…

통상 스포츠 신문들은 일요일에 휴간이지만… 역시나! 서울역에 도착하자 마자 집어 든 스포츠 신문의 머릿기사는 ‘차두리’였다. 그리고, 약 5개 지면에 걸쳐서 전날의 무용담을 다루고 있었다. 차두리, 안정환, 홍명보, 히딩크, 16강… 언제부턴가 익숙해져 버린 KTF 응원단의 사진도 화보 페이지의 한 코너에 등장했다.

축구 섹션이 끝날 무렵에 작고 초라한 타이틀이 하나 보였다. 한국 축구의 현실, 우리의 무관심과 냉대, 부끄러움을 보여주는 타이틀이었다. 이미 매진된 열차표 한 장을 붙잡기 위해 웹 페이지를 몇 번이나 새로 고치면서 공을 들였던 나 자신을 겸연쩍게 만든 타이틀…

“성남 김대의 2골… 득점 공동선두”

그리고, 그 옆에는 얼마전 경기 도중에 숨진 김도연(숭실대) 선수의 동생이 무학기 중고 축구대회에서 우승 트로피와 MVP를 먹었다는 소식도 실려 있었다.

그랬다… 차두리가 골을 넣던 날의 환희는 어쩌면 나의 환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룻밤을 지내고 다시 돌아온 곳에는 여전히 척박한 한국 축구의 모습이 있었을 뿐이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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