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두 유대 사상가의 우정과 엇갈림 '한 우정의 역사'

  • 입력 2002년 4월 5일 17시 38분


◇한 우정의 역사:발터 벤야민을 추억하며/게르숌 숄렘 지음/최성만 옮김/431쪽/ 1만5000원 /한길사

유대학자인 숄렘(1897∼1982)의 벤야민 회상록은 벤야민(1892∼1940)이 죽은 지 35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이 지난 후에 비로소 쓰여졌다. 숄렘이 회상하는 친구 벤야민은 국내의 독자에게 가장 잘 알려진 논문인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의 저자 벤야민과는 좀 다른 모습이다.

벤야민에 대한 최근의 관심이 탈 아우라(Aura·복제로는 나타낼 수 없는 원본의 독특한 ‘분위기’를 가리키는 벤야민의 개념) 시대에 대한 그의 매체이론에 집중되고 있다면, 숄렘의 회상록에서 벤야민은 무엇보다도 신비주의적 비젼을 지닌 뛰어난 언어 형이상학자이자 해설적 사고를 천성적으로 타고난 비평가로 부각된다.

1915년 여름의 뜻깊은 만남 이후 1940년 벤야민이 죽기까지 숄렘은 벤야민의 천재성을 누구보다 먼저 발견하고 지켜주고자 노력했던 가장 절친한 친구였다. 그는 벤야민에게서 “자신의 글을 찾아가는 율법학자와도 같은 순수함과 절대성, 정신적인 것에 몰두하는 태도와 분위기를 보았다”고 회상하고 있다.

유대 신비주의와 언어관에 대한 대화를 통해 벤야민과 깊은 정신적 친화력을 느꼈던 숄렘이 훗날 유물론에 접근하려는 벤야민의 시도를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반대했던 것은 당연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벤야민과 왕성한 지적 교제를 나누던 시절에 대한 그의 증언을 보면 정치와 종교, 유물론과 신학을 합치시키려는 지적 모색은 벤야민의 개인적 발상이라기보다는 심각한 문화적 위기에 빠졌던 그 시대의 특수한 상황에서 유래한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정작 이 문제를 벤야민보다 먼저 제기했던 숄렘 자신은 격심한 내면적 갈등을 거친 끝에 유대 전통의 연구에서 평생의 과제를 찾은 반면, 신학적으로 얻어진 인식들을 유물론적 용어로 투영시키는 일을 시대의 절박한 요청으로 받아들였던 쪽은 오히려 벤야민이었다.

1924년 이후 예루살렘에 거주한 숄렘과 베를린에 남아 그 동안 브레히트 문학의 열렬한 지지자가 된 벤야민은 공간적 거리를 뛰어넘는 신뢰를 유지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예루살렘과 베를린 사이의 거리 이상의 정신적 소원함이 생겨난다. 숄렘은 실험적 방법론으로 유물론을 받아들인 벤야민의 지적 모색 작업을 위험한 줄타기 이상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회상록을 통해 비로소 우리는 벤야민이 아도르노도 감탄해마지 않던 탁월한 재능, 텍스트의 애매모호한 의미 층을 뚫고 들어가 진리의 흔적을 찾아내는 뛰어난 독서 감각을 끝까지 잃지 않았던 데에는 숄렘의 역할이 결코 작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벤야민은 오랫동안 보지 못한 친구 숄렘과의 재회를 희망하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나뭇잎들은 폭풍이 불 때나 서로 만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적었다. 서로의 냉철한 지성을 따뜻한 우정으로 감싸안던 두 사상가가 살던 시대가 얼마나 절박한 상황이었는가를 감지할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역자의 꼼꼼함 덕분에 수월하게 읽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문득 되돌아본 우리 시대의 지식인 문화가 어쩐지 초라하게 느껴진다. 회상록 곳곳에서 엿보이는 두 사상가의 철학적 깊이와 원대함 뿐 아니라 서로의 지적 교류에 바친 투철함과 헌신적 열정에 비견될 만한 예를 더 이상 우리 주위에서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윤미애(서울대 강사·독문학)

yma1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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