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연예인 마약 '창작의 원동력'인가

  • 입력 2002년 3월 19일 15시 19분


《최근 인기 연예인들이 마약 복용 혐의로 잇따라 검찰에 구속되면서 연예인들의 무책임한 행동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마약 복용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연예인 개인의 모럴 문제인가, 아니면 창작의 고통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인가’에 대한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지만 부정적인 여론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11월 탤런트 황수정이 히로뽕 투약 혐의로 구속된 데 이어 가수 ‘싸이’와 탤런트 정찬이 대마초 흡연 혐의로, 그룹 ‘코요태’ 전 멤버 김구와 탤런트 성현아가 엑스터시 복용 혐의로 구속됐다. 가수 엄정화와 모델 이소라, 탤런트 김민종이 검찰에 자진출두해 결백을 밝혔고 엑스터시 복용 혐의를 받았던 탤런트 김정은도 조사결과 음성으로 판명돼 누명을 벗었다.

연예인들의 마약 복용사례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1975년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을 시작으로 윤형주 김세환 이장희 등 70년대 한국 포크록의 대표주자들이 대마초에 연루돼 르네상스를 구가하던 한국의 포크가수들이 일거에 무너졌다.

그동안 마약에 연루된 일부 연예인들은 창작의 고통을 주장하며 선처를 호소했다. 가수 신해철과 현진영, 싸이는 체포 직후 “창작의 고통을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가수 전인권은 지난해 5월 학술 계간지 ‘사회비평’에서 “마약을 3년만 허용하면 빌보드차트 1위에 오를 자신이 있다”며 “마약을 하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라고 주장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연예인을 포함한 광의의 문화 예술인에게 마약이 불가피한가의 논란은 1992년 소설 ‘슬픔이여 안녕’의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이 마약 복용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강은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면서 “나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나 자신을 파멸시킬 권리가 있다”고 주장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예술과 마약은 사강 이전부터 역사적으로 관계가 깊다.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는 대마초의 일종인 해시시에 찌들어 살면서 ‘악의 꽃’을 썼고, 비트 제너레이션의 대표작가 윌리엄 버로스는 평생 수십가지의 마약을 하면서 ‘벌거벗은 점심’ 같은 문제작을 냈다.

이 밖에도 프랑스 시인 랭보, 독일의 철학자 니체와 시인 노발리스, 미국의 시인 포와 에머슨 등 당대 최고의 문인들은 술에 아편을 섞어 마시며 환각 속에서 걸작을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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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많은 예술인들은 작품활동을 하면서 한계상황을 겪는다고 고백한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는 1997년 자서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에서 “슬럼프에 빠져 항우울제를 복용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작가 이문열은 “예술인들의 창작의 고통이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라며 “한계상황에 이를 때면 폭음을 하며 시간이 지나가 주길 기다린다”고 말했다. 많은 작가들이 한동안 절필을 선언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최근의 연예인 마약 복용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지배적이다. 마약을 복용한 연예인들 대부분이 탤런트나 댄스가수로 창작의 고통을 잊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일순간의 쾌락을 위해 마약을 복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엑스터시는 테크노파티 등을 위해 일시적인 환각에 빠지려고 복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섹스’ 과정에서의 흥분을 극대화하기 위해 마약에 손을 대는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PD는 “연예인들의 마약복용은 청소년들의 흡연 심리와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다”면서 “창작의 고통 운운하지만 사실상 ‘겉멋’ 혹은 호기심에서 마약에 손을 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자극적 문화 속에 사는 연예인들이 새로운 자극을 찾기 위해 마약을 복용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연예인들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인 현실에서 특히 학부모들은 이들의 마약 복용을 법적으로 엄하게 제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정선씨(39·주부)는 “청소년들에게 마약에 대한 호기심을 부추기는 연예인들의 무책임한 범법행위는 엄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일부 예술가들이 마약을 창작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하지만 감성의 발산을 인위적인 매체에 의존하면 결국 이의 노예가 되고 사회가 병들게 된다”고 말했다.

한편 마약 복용으로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을 일방적으로 매장하기보다 재활을 통해 이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끌어안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미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마약의 그늘에서 벗어나 에이즈 퇴치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됐던 한국의 통기타 가수들도 이후 재기에 성공해 성실한 사회인으로 지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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