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낙하산’없다던 청와대의 거짓말

  • 입력 2002년 2월 21일 18시 04분


정부가 스스로 한 말을 뒤집음으로써 다시 한번 국민을 실망시켰다. 낙하산인사를 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저버리고 공기업인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에 오홍근(吳弘根) 전 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을 내려보낸 인사가 그것이다. 아무리 정권 말기라고 해도 이처럼 국민이 안중에 없다면 남아있는 임기 1년이 더욱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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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홍근 前수석 '낙하산 인사'

정부가 낙하산인사 방지책으로 인재풀을 만들어 전문성 있는 경영인을 선출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한 지 채 한해가 지나지 않았다. 이 정권 들어 유난히도 공기업 사장자리를 전리품처럼 나눠먹는 일이 많다는 비판에 직면하자 정부는 기관장평가위원회를 구성해 민주적 방식에 의해 객관성 있는 인사를 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또다시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오씨를 임명함으로써 정권은 스스로의 신뢰성에 먹칠을 했다.

도대체 오씨가 가스안전업무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 아무나 맡아도 되는 자리라면 왜 세금에서 막대한 자금을 지원해 이런 기관을 설립하고 그런 자리를 만들었는가. 오씨의 전력을 볼 때 아마도 그는 정부가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으로 내정하기 전까지 가스안전 업무에 대해서 평생을 들어본 일조차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오씨가 갑자기 이 공사의 사장으로 임명된 이유에 대해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는 작년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 당시 국정홍보처장을 맡아 이를 비판하는 국내외 언론사 혹은 국제언론단체들과 치열한 갈등을 일으켰던 주인공이다. 청와대가 오씨의 그 같은 행위를 정부에 대한 큰 공으로 생각해 이런 자리를 주었다면 이 정권의 도덕성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이런 비전문가들이 공기업에 입성함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민간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진한 공공개혁은 이미 물 건너간 느낌이다. 이런 식의 인사를 하면서 어떻게 공공노조를 설득하고 스스로 뼈를 깎는 개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공기업 개혁이 이뤄지지 않아 발생할 해악을 처리하기 위한 경제적 부담은 애꿎은 국민의 몫이다. 정권의 나눠먹기식 인사의 후유증을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가스안전공사 사장평가위원회의 일부 인사는 산업자원부의 요청대로 인선을 했다고 주장했고 산자부 실무자는 상부(청와대)의 뜻에 따라 오씨를 천거했다고 밝혔다. 제아무리 좋은 제도와 수단이 있더라도 이번 인사에서 보듯 최고임명권자가 이를 지키고 활용할 뜻이 없다면 의미가 없다. 여론에 귀기울이지 않고 독선적으로 인사를 하는 정부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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