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슬픔이 결여된 서양정신 보기 '나르시스의 꿈'

  • 입력 2002년 2월 15일 17시 41분


나르시스의 꿈/김상봉 지음/394쪽 2만원 한길사

할리우드의 유명한 편집자 중 한 사람인 톰 노블은 편집이란 “사람들이 스크린 속에서 편집된 것을 눈치챌 수 없게 만드는 기술”이라고 했다. 이 말은 영화의 생명이 관객에게 생생한 현실감을 주는 것이라는 할리우드의 세계관을 집약적으로 나타낸다. 이런 생각을 영화 용어로는 흔히 ‘환영주의(illusionism)’라 부르는데, 이 말은 원래 원근법을 이용해 그림을 마치 현실처럼 보이게 하려는 르네상스 화가들의 태도를 지칭하는 미술사 용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런 환영주의는 특정 시기의 예술적 태도만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이데아와 현실의 유사성을 전제하는 플라톤의 철학에서부터 이어지는 서양의 근본적 정신을 대변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데리다의 해체니 탈근대 철학이니 하는 것은 바로 서양의 이런 환영(유령)을 깨우치려는 자의식의 노력인지도 모른다.

책 제목에서도 나타나듯이 이 책은 서양의 환영주의를 나르시스의 꿈으로 표현한다. 그런데 어쩌면 저자는 나르시스의 꿈을 환영주의에 비유하는 것 자체를 상당히 불쾌하게 여길 것 같다. 저자가 서양의 정신을 나르시스의 꿈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저자만의 문제의식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와 서양정신의 차이를 말함으로써 서양정신의 본질을 밝히려는 시도라고 고백하고 있는데, 환영주의니 해체니 하는 잣대 자체도 서양정신의 유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따르면 서양정신은 근원적으로 슬픔이나 상처를 결여하고 있다. 타자에 대한 인정이나 배려는 자신의 처절한 슬픔으로부터 나온다. 서양정신은 항상 타자의 배려를 내세우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을 위한 배려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이 내세우는 자유라는 것도 한갓 자신의 이기적 욕망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서양정신은 자기 우월과 자기애에 도취돼 있다. 나르시스처럼 자신의 미모에 도취된 것이다. 이런 자아도취는 바로 아름다움에 관한 미학적 담론들 속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그래서 총 2부로 나누어진 이 책의 전반부에서 저자는 플라톤부터 독일 관념론에 이르기까지 서양정신의 아름다움과 숭고를 역사적으로 추적함으로써 그들의 정신적 나르시시즘을 낱낱이 파헤친다.

이런 분석 작업을 거친 후 제 2부에서는 서양과 다른 우리만의 슬픔의 해석학을 시도한다. 한용운의 슬픔과 함석헌의 역사의식, 그리고 저자의 은사인 박동환 교수(연세대)의 절망의 철학을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엮어주는 것은 나르시시즘이 아닌 자신의 처절한 아픔과 상처이다. 실연의 아픔과 상처만이 진정으로 자신을 타자 속에 비추어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고유 정서인 한과 슬픔은 한때 일부 트롯 가요의 가사나 신파 영화에서처럼 끝없는 자기 학대나 강박증세의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 책은 그런 정서가 역사적 반성의식의 지평으로 확장돼 새로운 철학적 패러다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철학계나 일반 대중들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진다. 하지만 아직 시론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 저자의 시도가 이 책 한 권으로 끝나게 될 경우 단발성 문제제기로 그치게 될지도 모른다.

박영욱 고려대 강사·서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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