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규민]유승준과 안정남

  • 입력 2002년 2월 8일 18시 04분


1970년대 초 이 나라의 독재정권은 반정부 학생들을 잡아다 강제로 군대에 집어넣은 적이 있다. 그것도 최전방 수색중대 몇 번 소총수 하는 식으로 꼬리표를 달아 명령을 냈기 때문에 해당되는 학생은 보안대(지금의 기무사)의 감시 아래 3년을 꼼짝없이 철책선 안에서 지내야 했다.

군대생활이 이렇게 처벌의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심각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범법자가 교도소에 가듯 정권의 미운털들이 끌려가는 곳이 군대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국방은 더 이상 국민의 신성한 의무로 여겨지지 않게 된 것이다. 정부가 찍으면 아무리 정당한 면제사유가 있더라도 반드시 군대에 가야 했고 반대로 권력층 자제들은 멀쩡한 사지를 갖고도 군에 가지 않을 수 있었는데 그때 망가진 국방의무의 형평성을 복구하는 데는 꽤나 긴 시간이 필요했다.

▼더럽혀진 국방-납세 의무▼

유승준이 최근 지극히 실용적인 선택을 했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는데 이 역시 병역의무의 형평성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군대에서 3년을 지내고 나오면 댄스가수의 생명이 끝나는 나이 서른이 되기 때문에 미 국적을 선택했다”고 하지만 그 긴 공백기간 중 더 쉽게 녹슬 수 있는 각종 섬세한 재능의 소유자들은 ‘병역이 의무이기 때문’에 지금도 군대에 가고 있다.

밤을 새워 도착한 조국 땅에서 입국이 거절된 채 쫓겨남으로써 유승준은 팬들로부터 단절된 ‘망각의 지역’으로 유배됐다. 지금은 그 기한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는 연예인에게 가장 치명적이고 가혹한 형벌인 고립의 외로움을 이미 온몸으로 체험하기 시작했다. 당국의 과잉 대응 여부가 논란을 빚고 있기는 하지만 그 배경에 분노한 국민감정이 있다는 사실은 병역문제가 그만큼 형평성에 예민한 사안임을 말해 준다(물론 정당한 면제사유가 있어 군대에 가지 못한 사람과 그 가족들을 의도적인 병역기피자들과 함께 묶어 사회적으로 몰매를 주는 것 역시 형평에 어긋나는 일로 경계의 대상이다).

나라를 지키는 병역의무와 함께 세금을 내서 나라살림을 유지토록 하는 납세의무는 국민의 또 다른 4대 의무 중 하나다. 미국 시민권자 한 명의 ‘배신’을 놓고 온 나라가 떠들썩한 이때 납세의무를 놓고 장난을 친 혐의의 당사자는 국민의 시야에서 조용히 벗어나 있다. 안정남 전 국세청장이 그 주인공이다.

자신이 60억원짜리 서울 강남의 노른자위 땅을 비롯해 그 많은 재산을 쌓는 과정에서 일반 납세자들만큼 정당하게 세금을 냈는지는 의문이다. 국세청이 지원사격을 하고 있어 밝혀질 가능성도 당장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일은 신승남 전 검찰총장 동생이 뇌물을 받고 안씨에게 특정업체의 세금을 깎아주도록 부탁했다는 진술이다.

국세청이야 당연히 아니라고 하겠지만, 단 한푼이라도 세금이 깎였다면 이는 재량적 법 집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조세정의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이다. 국세청장 맘대로 세금이 매겨지는 세상에서는 검찰총장 동생처럼 ‘아군’에 세금을 깎아주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반대로 체제에 비판적인 집단에 대한 보복과세도 가능하게 된다. 이쯤에서 우리는 이 정권 들어, 또 안정남씨가 청장으로 재직하던 기간 중 국세청이 집행한 세무사찰의 대상들을 돌이켜보고 그 정당성 여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국세청장이 내편 네편을 갈라 징세권을 선별적으로 행사함으로써 국민의 납세의무를 욕되게 한 사실이 확인되면, 학생들을 강제로 입대시켜 신성한 국방의무를 더럽힌 군사정권과 이 정부는 비판자를 압박하는 수단만 차이가 있을 뿐 국민의 4대 의무를 모욕하기는 매한가지다.

▼2천만 납세자의 분노▼

정부가 세금을 걸어 누구든지 감옥에 보낼 수 있는 나라라면 거기 사는 기업인, 언론인, 야당 정치인의 삶은 하루살이 같은 인생일 뿐이다. 그런 악선례를 몸으로 실천한 혐의의 안씨는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를 만큼 사랑하는 조국으로 속히 돌아와 남자답게 조사받기 바란다.

덧붙여 사직당국도 그에 대한 수사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아 또 다른 의혹을 잉태하는 어리석음을 재연하지 않기 바란다. 병역의무를 피하기 위해 미 국적을 선택한 가수에게 그토록 엄했던 정부가 그보다 몇 배 더 큰 해악을 끼친 사람을 불러들여 조사하고 법에 따라 처벌하지 못한다면 그 비형평성은 국민이 인내할 수 있는 범위를 넘는 것이다. 60만 장병의 분노를 고려해 유승준이 박대를 당했다면 2000만 납세자를 다독거리기 위해 안정남 사건은 반드시 추궁되어야 한다.

현실적 장애가 많겠지만 이 시대 양식 있는 검사들은 정치검찰을 상징하던 총장의 동생이 연루된 사건을 다루는 데에 당당할 수 있어야 한다. 신승남 검찰이 아닌 이명재 총장의 새 검찰이 아닌가.

이규민 논설위원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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