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근기자의 여의도이야기]벤처, 그래도 희망

  • 입력 2002년 2월 4일 17시 49분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서 무역센터 쪽으로 가다보면 탄천 너머 왼쪽으로 유난히 눈에 잘 들어오는 건물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닌 ‘벤처 1세대’로 불렸던 메디슨의 본사 건물이다. 이 건물이 자리잡은 곳은 벤처기업이 모여있어 ‘테헤란밸리’라는 이름까지 붙은 테헤란로의 초입에 해당되는 곳. 그래서인지 여기를 지날 때면 벤처기업들의 ‘맏형’이 입구를 든든히 지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 맏형이 쓰러졌다.

그 이전부터 이미 테헤란로의 벤처타운에는 찬바람이 몰아쳤다. 벤처붐이 급격히 식으면서 자금력이 약한 벤처기업들이 잇따라 테헤란로를 떠났다. 이제는 “테헤란밸리는 더 이상 없다. 단지 테헤란로만 있을 뿐이다”는 말이 나오는 지경이다.

‘테헤란로를 보면 한국경제가 보인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테헤란로는 그동안 업계의 부침(浮沈)을 정확히 반영해왔다. 원래 삼릉로였던 이 거리는 중동 건설붐이 한창이던 1977년 이란의 수도 테헤란 시장의 방한을 기념해 테헤란로로 이름이 바뀌었고 한동안 중동 진출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정부가 강력하게 수출 드라이브를 걸었던 80년대 중반 이후 이곳에는 500여개의 무역업체가 집결했다.

90년대에는 금융업체들이 진출 러시를 이뤘다. 그러다 90년대 말 외환위기로 금융업체들이 속속 철수하면서 늘어난 빈 사무실에 벤처기업들이 대거 모여들었다가 다시 하나둘 떠나고 있는 것.

속설대로 ‘벤처의 시대’는 가는 것일까. 한 벤처기업 대표는 “그렇지 않다”고 항변했다. 무늬만 벤처였던 기업들이 테헤란로를 떠나고 기술력과 영업력을 갖춘 기업은 남으면서 진정한 벤처타운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것.

업계 관계자들과 벤처에 투자한 많은 투자자들은 그의 말대로 살아남은 벤처기업들이 제대로 된 ‘테헤란밸리 신화’를 부활시켜 주기를 바라고 있다. 아니 적어도 성패(成敗) 여부를 떠나 더 이상 벤처기업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다.

벤처기업으로 출발해 연 매출 1200억원대의 회사로 성장한 한 코스닥등록 업체의 사장은 올해 경영 목표를 ‘작은 회사 만들기’로 세웠다고 한다. “회사가 커갈수록 초창기에 가졌던 열정은 오히려 줄었다. 작은 벤처기업 시절의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그의 말을 벤처기업인들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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