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화경/현상금

  • 입력 2002년 2월 1일 18시 11분


미국 서부영화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매섭게 째진 눈, 남루한 옷차림에 번개같이 빠른 총 솜씨. 바로 현상금 사냥꾼(bounty hunter)이다. 이들은 영화 속 인물만이 아니다. 무법이 판을 치던 서부개척 시절엔 실제로 현상금을 노리는 직업총잡이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전설적인 은행강도로 악명을 떨치던 제시 제임스도 자기 목에 걸린 현상금 때문에 어이없는 최후를 맞았다. 이름까지 바꾸고 숨어살다가 현상금 1만달러를 탐낸 부하의 총에 허무하게 죽고 말았으니까.

▷일제도 우리 독립투사를 검거하는 수법으로 현상수배를 애용했다. 백범 김구(白凡 金九) 선생에게 걸린 현상금은 당시 돈으로 60만원이나 됐다. 쌀 한 가마에 20원 할 때였으니 요즘으로 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영남에서 의병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돌팔매 장군’ 신돌석(申乭石)도 부하 손에 살해된 걸 보면 동서양을 불문하고 현상금의 유혹은 뿌리치기 힘든가 보다. 1804년 통조림이 처음 세상에 나온 것도 나폴레옹이 전쟁터에서 간단히 먹을 방법을 개발하라며 거액의 현상금을 내거는 바람에 모두들 머리 싸매고 덤벼들었기 때문이라지 않는가.

▷국내 현상금 최고액은 3년 전 붙잡힌 신창원에게 걸렸던 5500만원이다. 처음엔 500만원이었는데 2년이 지나도록 잡히지 않자 11배까지 불어났다. 아직 미궁에 빠져 있는 화성 연쇄살인사건 범인에게도 5000만원이 걸려 있다. 그러나 이것도 외국의 ‘거물’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미국이 9·11테러 배후로 지목한 오사마 빈 라덴의 목에 건 현상금은 2500만달러로 우리 돈으로 치면 325억원이나 된다. 또 탈레반 최고 지도자 무하마드 오마르에겐 1000만달러, 이 밖에 500만달러짜리 수배범도 20명이 넘는다니 일확천금을 노리는 현대판 현상금 사냥꾼이 나올 법도 하다. 이와는 달리 ‘상징적인 현상금’도 있다. 대우노조가 김우중(金宇中) 전 회장을 현상수배하면서 건 돈은 500달러밖에 안 된다.

▷작년 11월 몰래 출국한 안정남(安正男) 전 국세청장에게 드디어 현상금이 붙었다. 자영업자들로 구성된 ‘공직비리사범 소탕 시민특공대’가 안씨를 체포하는 사람에게 2002만원을 주기로 했다는 얘기다. 특히 소재를 알려주면 지급하겠다는 44만4444원은 모두 죽을 사(死)자를 뜻한다니 안씨에 대한 그들의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알 만하다. 이쯤 되면 안씨 스스로 귀국해 법의 심판을 받는 게 국민에 대한 마지막 도리가 아닐까.

최화경 논설위원 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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