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그 모순과 효용… 라캉 다시 읽기

  • 입력 2002년 2월 1일 17시 27분


라캉의 정신의학/브루스 핑크 지음 맹정현 옮김/390쪽 2만원 민음사

라캉 이론의 신화와 진실/데이비드 메이시 지음 허경 옮김/602쪽 2만8000원 민음사

무의식의 발견은 신대륙의 발견에 버금간다. 근대의 서양 사상사는 데카르트가 발견한 반성적 주체의 내면성을 기반으로 한다. 반면 오늘날 새로운 사상은 무의식이라는 토지 위에서 왕성한 자양분을 취한다. 기존의 인문학과 예술이론의 지평이 황혼기에 접어들 때, 그 무의식의 대륙에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이 두 사건의 관계는 어떤지 몰라도 대규모의 이민과 이식은 필연적인 양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특히 라캉 이후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가 구축한 연락망, 정신분석과 주변 학문 사이의 다양한 연락망이 그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번역 출간된 라캉 연구서 두 권은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다. 하나는 불문학자인 메이시의 저서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분석학자이자 임상의인 핑크의 작품이다.

메이시는 라캉의 과거에 대해서, 그가 시대와 주변 학문에 빚진 부채에 대해서 묻는다. 그 질문의 태도는 회의적이고 비판적이다. 저자는 시종 라캉이 다른 영역의 개념을 차용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오류와 왜곡에 대해서, 혹은 차용사실의 은폐에 대해서, 나아가 무리한 차용 때문에 빚어진 자기 모순에 대해서 메스를 들이댄다. 라캉의 신화적 권위를 해부해서 그 배후의 진실을 들추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 진실은 라캉의 문헌이 놓여 있던 역사적 문맥에 있다. 저자는 이 문맥 안에서 라캉의 개념이 처음 형성되고 도입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외부적 관점의 비평은 라캉의 사상이 형성돼 온 역동적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하지만 라캉이 시대의 한계를 넘어 자신만의 구심점에 도달하는 모습은 이 책에서 잘 나타나지 않는다. 라캉의 개념들은 끊임없이 문맥이라는 이름의 외부로 환원, 분산되고 있다. 독창적인 라캉은 보이지 않고 시대 속에 함몰된 라캉, 그 속에서 허우적대는 라캉만이 보일 뿐이다.

반면 핑크는 라캉의 정신분석이 지닌 독창성과 내재적 정합성에, 그 이론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효용성과 미래적 전망에 주목한다. 라캉의 이론적 변화과정에 정통한 저자는 그 모든 변화가 수렴되는 지점에 서서 라캉의 이론을 간결하면서도 탄력 있게 재구성하고 있다.

사실 자크-알랭 밀레, 슬라보예 지젝 등과 더불어 90년대 이후 라캉 부흥운동의 주역인 핑크의 학문적 능력은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의 저서들은 밀도에 찬 문장으로 라캉의 주요 개념들에 명쾌한 투명성과 약동성을 불어넣고 있다. 라캉의 난해성을 직접 경험한 독자, 라캉을 따라가다가 오리무중에 빠져본 독자일수록 그런 문장의 힘을 상쾌하게 느낄 것이다.

이 책은 핑크의 두 번째 저서로, 임상과 치료의 차원에서 라캉의 정신분석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의 이론적 천착과 풍부한 임상적 경험이 어우러져 나온 역작이다. 게다가 역자의 공들인 번역문장으로 이 책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이 훌륭한 저서가 국내의 라캉 연구와 수용에 커다란 자극제가 될 것이라 믿는다.

김상환(서울대 교수·서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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