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눈]정종섭/당권-대권만 분리하면 되나

  • 입력 2002년 1월 27일 18시 13분


우리의 권위주의 대통령을 두고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지적하면 반발만 하던 집권당이 결국은 실패를 자인하고 대통령선거 후보의 경선을 앞두고 당권과 대권의 분리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면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여당이 이런 태도를 보이자 야당도 비슷하게 당권과 대권의 분리를 내세우고 있다. 이제는 모두들 우리 나라 대통령이 민주적 대통령이 아닌 권위주의 대통령이라는 점은 인식한 모양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치권에서 말하고 있는 당권과 대권의 분리가 과연 권위주의 정치와 제왕적 대통령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정당의 권력과 대통령의 권력을 분리한다는 이런 발상에는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다. 우선 그간 헌법기관인 대통령이 정당권력을 장악한 것이 국정 운영이나 정치발전에 심각한 장애가 되었다는 점과 국가기관도 아닌 정당이 국정 운영에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다는 것을 시인하는 점이다.

▼분리론은 권력투쟁의 산물▼

우리 헌법에는 국회와 행정부, 사법부가 권력분립원칙에 따라 분명하게 분리되어 있고 서로 통제하도록 되어 있음에도 현실에서 대통령이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었다면 이는 국민이 정해놓은 헌법과는 모순되는 것이고, 대통령을 전근대적인 제왕으로 군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강력한 현실적 요인이 있다는 점이 증명된다. 국회가 국회답지 못하고,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 대통령이나 당수에게 끌려 다니게 만든 그 무엇이 있었기에 현실에서 권력은 대통령으로 통합되고 군주국가처럼 대통령이 국정 전반을 좌지우지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무소불위의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의 실수는 곧바로 국민의 고통으로 이어졌다. 우리 국민이 지금까지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는 바이다.

권력분립을 천명하고 있는 헌법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이런 권력집중이 생기게 된 배경에 가장 문제가 되어 온 것이 한국의 정당이다. 보스의 가신들과 충복들로 형성된 붕당 또는 사당의 성격을 지녔던 봉건적 패거리집단이 바로 국회를 무력화하고 국회의원을 국민의 대표에서 대통령의 부하로 전락시켰다. 대통령은 이런 정당의 보스와 지역맹주로서 지역주의와 공천권이라는 무기를 사용하여 국회의원을 자기 부하로 만들었고, 야당의 당수 역시 이와 같은 구조에서 국회의원을 자기 부하로 만들었다. 여야의 정권교체가 되어도 권위주의적인 제왕적 통치가 그대로 온존한 이유이다.

오늘날 제왕적 대통령제는 근본적으로 붕당적 정당의 개입으로 국회가 무력화되고 국회의원이 정당과 대통령의 하수인으로 전락하여 권력통제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서 기인하는 만큼 국회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제일의 순서다. 그러자면 정당부터 개혁하여야 한다. 권력화된 정당과 정치 경화의 주 병인인 중앙당 중심의 구조를 개혁하여 중앙당을 폐지하면, 국회의원이 각자 국민대표의 무게를 가지고 활동하게 되어 국민대표로서 기능도 할 수 있고, 국고보조금의 문제와 막대한 정치자금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정치부패도 자연 줄일 수 있다.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원내교섭단체를 중심으로 정당활동을 하게 되어 국회가 정상화되고, 그 지위도 향상된다. 정치판의 보스도 필요없다. 오로지 국회의원으로서 국민을 대상으로 정치하면 된다.

대통령이 정당보스가 되지 못하는 것은 국정을 불편부당하게 운영하는데 필수적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고, 현재의 당권과 대권분리론의 결론이 아니다. 따라서 현재 한국 정치개혁의 주 타깃은 정당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중앙당 폐지 선행돼야▼

그런데 현재 정치권의 당권과 대권의 분리론은 대통령이 당의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일 뿐, 정치발전의 가장 큰 장애물인 전근대적 정당은 그대로 존속시키고 이런 정당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겠다는 것이다. 패거리 정치의 본거지인 정당을 그대로 둔 채 공천권을 장악하여 또 다른 제왕으로 군림하는 정당보스를 차지하는 권력투쟁이 온존하는 한 국회의원은 여전히 정당보스의 하수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고, 국회는 국민대표들이 모인 민의의 전당이 아니라 정치패거리들의 놀이판에 지나지 않게 된다.

따라서 당권과 대권분리론은 이런 정당의 모순구조를 그대로 온존시키는 것이므로 민주화의 전략이 되지 못하는 것이며, 정치판의 적나라한 권력투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하는 제1차적 과제는 국회의 정상화와 전근대적인 정당의 혁파에 있으므로 근본적인 문제를 놔두고 당권-대권의 분리가 마치 권위주의 통치를 다 극복할 수 있는 것 인양하는 것은 또 여론을 조작하고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다.

정종섭 서울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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