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영석/위성방송 규제 확 풀어라

  • 입력 2001년 12월 23일 17시 57분


방송위원회가 새로운 통합방송법에 근거해 위성방송사업자를 선정한 지 꼭 1년이 되었다. 위성방송 사업자인 한국디지털위성방송은 연말 시범방송을 시작한 뒤 내년 3월부터는 정식으로 140여개 채널의 상용 서비스를 계획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 본격적인 위성방송시대에 접어든 셈이다.

위성방송 하면 흔히들 일본의 NHK나 홍콩의 스타TV와 같이 채널 수는 그리 많지 않아도 지역적 공간의 장벽을 뛰어넘어 수신 범위가 매우 넓은 아날로그형 위성방송을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내년부터 실시할 예정인 디지털위성방송은 그 개념부터가 다르다. 기존의 아날로그식 방송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고품질과 고음질의 서비스 제공은 물론이고, 디지털 압축기술의 발달로 수백 개의 채널 서비스가 가능하다. 또한 홈쇼핑 홈뱅킹 등 쌍방향 데이터 서비스의 제공은 그야말로 디지털 방송이 아니면 불가능한 서비스로서 방송과 통신의 융합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게 될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위성방송에 관한 본격적 논의는 정치 경제적 측면에서 먼저 시작됐다. 80, 90년대 아직 위성방송을 실시하지 못하고 있던 시절 수많은 외국 위성방송의 전파가 무제한적으로 날아드는 이른바 ‘스필 오버’(전파 월경)에 대해 우리는 거의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외국 문화의 무차별적 침범은 우리의 문화구조를 심각하게 왜곡시켜 궁극적으로 외래문화 및 경제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우려감과 함께 우리도 이에 대응하는 위성방송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이다.

본격적인 위성방송시대의 개막과 함께 21세기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필수 조건이라 할 수 있는 콘텐츠 문화산업이 획기적으로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통해 국민의 문화적 선택권이 넓어지고, 문화적 취향 또한 다양해질 것이다. 방송문화적 혜택에서 소외된 난시청 지역 주민은 물론이고, 북한을 포함한 한민족 거주 지역에 대한 직접 위성방송 서비스 제공은 한민족 공동체 의식의 형성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아울러 국경 없는 글로벌 시대에 우리의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수단도 될 수 있다.

위성방송은 이렇게 국익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사업이긴 하지만 그것이 성공적으로 정착될 수 있는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무엇보다도 위성방송 사업이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여러 가지 제약 조건 하에서 수익성 전망이 그리 낙관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위성방송이 시작되기도 전에 지역방송사들이나 기존의 케이블방송 사업자들이 강력하게 반발하는 등 향후 위성방송의 앞날이 매우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렇게 방송산업 전반이 어려움에 처하게 된 데는 역대 방송정책 입안자들의 무능력 이외에 방송의 디지털화라는 기술환경의 변화도 큰 몫을 차지한다. 기존의 공중파나 케이블방송 등이 디지털화되면서 채널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고, 인터넷 방송이나 이동통신 수단을 이용하는 방송 등 과거 상상도 하지 못했던 유사 방송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늘어난 채널을 메우기 위한 프로그램 조달 비용이나 디지털 전환 비용은 자꾸 늘어나는 데 비해 그것을 충당하기 위한 수지구조의 개선은 거의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방송환경이 이렇게 급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성을 포함한 방송 전반에 대한 정책은 지난 몇십년간 유지해 왔던 아날로그 시대의 규제 위주 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채널 사업자 선정에서부터 서비스 영역에 이르기까지 국가기관이 일일이 간섭하는 공영성 위주의 방송규제 정책이 과연 이 디지털 환경에서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과감하게 탈규제 정책을 펼치고 있는 영국, 미국, 일본 등의 선진국 디지털 위성방송 시장에서조차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해 인수합병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막대한 자본이 소요되는 국책사업의 일환으로 시작한 디지털 위성방송 사업이 과거와 같은 규제 위주의 방송정책에 발목잡혀 좌초하는 일이 없도록 과감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영석(연세대 교수·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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