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구멍 뚤린 치안, 국민은 불안하다

  • 입력 2001년 12월 23일 17시 57분


아니나 다를까. 우려하던 강력사건이 빈발해 각종 게이트로 얼룩진 한 해를 보내며 그렇지 않아도 어깨가 움츠러든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지난주 대전에서 발생한 은행강도사건은 범인들이 권총으로 은행원을 살해한 뒤 거액을 강탈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우리나라가 머지않아 학교에서까지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지는 미국처럼 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연말 방범 비상령을 내리고 ‘비상 근무’에 들어간 상태에서 이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더구나 은행강도들이 사용한 권총이 경찰에게서 탈취한 것일 가능성이 커 결과적으로 경찰이 ‘범행 도구’를 제공한 형국이 되었으니 국민이 어떻게 경찰을 듬직한 민중의 지팡이로 믿겠는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이고 민생 치안은 경찰의 최우선 과제다. 잇단 강력사건에서 드러난 경찰의 한심한 모습은 최근 공안기관 사이에 벌어진 갈등의 여파 때문이 아닌가 우려된다. 바로 한 달 전까지 총수였던 이무영 전 경찰총장이 ‘수지 김 살해 은폐 조작 사건’에 연루돼 구속되자 경찰 내부에서 반발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국가정보원과 검찰 등 다른 공안기관에 대한 반감이 크게 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내의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가 기강 해이를 불러왔고 그 결과 번번이 강도에게 당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은 아닌가. 여기에다 새 청장의 부임에 따른 인사가 계속되면서 모두 인사에만 정신이 팔려 민생 치안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지적도 예사롭지 않다.

경찰은 지금부터라도 정말로 ‘비상 근무’에 돌입해야 한다. 특히 이달 들어 강도들의 집중 표적이 되고 있는 금융기관에 대한 방범 활동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대전 은행강도 사건에서 보듯 범인들은 범행 대상의 이동시간은 물론 범행 장소에 폐쇄회로 TV가 없는 점 등을 모두 숙지한 뒤 범행을 저질렀다. 반면 경찰은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범인들만큼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 경찰이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면 방범상의 허점을 발견하고 관련 은행과 함께 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범인들은 치밀한 준비를 하는데 경찰은 방범비상령이라는 구호만 외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정부가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국민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찰뿐만 아니라 모든 공직자가 이 같은 책임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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