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김형경/"정신분석 받아 보실래요?"

  • 입력 2001년 11월 7일 20시 22분


‘굿 윌 헌팅’ ‘애널라이즈 디스’ ‘최종 분석’. 이것은 정신분석 과정이 줄거리 전개에 깊이 개입되고, 분석 결과가 갈등 해소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영화들이다. 외국 영화에서는 심지어 “아, 심심해, 나의 세라피스트나 만나러 갈까?” 그렇게 독백하는 인물도 만날 수 있다. 우리 관객들은 영화 속의 그런 일은 저항 없이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은 그저 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몇 해 전 나는 집중적으로 정신분석을 받은 경험이 있다. 그런데 내가 정신분석을 받는다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은 일단 의혹과 부정의 시선부터 던졌다. 그 일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반문부터 노골적인 비정상 취급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막상 나의 정신분석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말해주면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관심 깊게 들었다. 따로 전화해서 그 다음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묻는 이도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정신분석에 대해 거리감을 갖는 듯하지만 내밀한 영역에서는 다들 필요성을 느끼고 공감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사실 주변을 둘러보면 누구나 한 두 가지씩은 눈에 띄는 정서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게 보인다. 쇼핑벽으로 늘 신용카드 결제일에 쫓기는 사람, 배우자나 애인을 두고도 여전히 외로워서 다른 연인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사람, 사람들과 있을 때는 극단적인 조증이다가 혼자 남으면 걷잡을 수 없이 울증으로 빠져드는 사람, 반항적이고 문제아인 자식을 둔 사람, 아무에게도 내색할 수 없는 성 불능의 문제를 가진 사람, 특별한 병은 없는데도 늘 몸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사람….

내게는 그런 현상들이 대체로 정신 영역의 장애로 보인다. 그럼에도 감기나 두통에는 금세 병원으로 달려가는 이들이 정신의 문제에 이르면 아무런 대책도 취하지 않는 점이 의아했다.

그들은 자신이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 걸 어떻게 하느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그런 이들일수록 정신 치료라는 것에 대해 더 많은 편견을 갖고 있는 것도 같았다.

내가 이번에 발표한 소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은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2600장 분량이다. 그 중 1000장 분량은 정신분석 장면에 할애되어 있다. 구성면에서는 그것의 비중이 너무 크지 않나 의심했고, 사건 전개에서는 그것이 혹시 장애물로 여겨지지 않을까 염려스러웠지만 그 모든 것을 감수하기로 했다. 소설의 미학보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우선했다는 뜻이다.

그것을 감수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내가 정신분석을 통해 얻은 치유의 경험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였다. 다행히 독자들로부터 소설을 읽으면서 한 번쯤 정신분석을 받는 느낌이었다는 독후감, 얼마간 치유의 경험을 했다는 소감을 접할 수 있어 기뻤다.

몸이 아픈 것처럼, 마음이 아픈 것은 죄가 아니다. 숨겨야 할 부도덕도 아니다. 가장 나쁜 것은 그 속에 자신을 방치하는 일일 것이다.

인간의 정신에 ‘정상’이라는 개념은 없다고 한다. 누구나 정신의 긴장과 갈등을 안고 있고 그것을 끊임없이 조절하고 재조정하는 과정에 있을 뿐이라고 한다. 이런 말로 정신분석에 관한 편견을 완화할 수 있을까.

“인간의 신체가 수분, 지방, 단백질, 탄수화물, 핵산의 유기 화합물이듯 인간의 정신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의 정신은 불에 타기 쉽고 공격적인 유황, 밀도가 높고 억압적인 납, 지독히도 현명한 소금, 포착하기 어려운 유동성의 수은의 특수한 결합이다.”

그래서 정신분석은 곧잘 연금술에 비유되곤 한다. 그 물질들을 어떻게 결합하고 조절하느냐에 따라 한 인간이 금이 될 수도 있고 구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감기에 걸렸을 때 약을 먹고 쉬어 주는 것처럼 정신의 영역에 대해서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경제 드라이브 정책과 물질 만능주의에 의해 한편으로 치워졌던 우리의 정신 영역에 더욱 그 일이 필요해 보인다.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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