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지구촌 '또 하나의 전쟁' …일자리 대란

  • 입력 2001년 11월 6일 18시 55분


《지구촌이 실업 대란에 허덕이고 있다.

세계 경제를 주도해온 미국은 정보기술(IT) 산업의 불황에 더해 ‘9·11 테러’ 여파로 20여년 만에 가장 심각한 실업 상황을 맞고 있다. 일본도 실업률 기록을 경신중이다. 대규모 구조조정과 경기침체로 아시아 국가에서도 실직자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추세면 내년 말까지 전세계에서 2400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실업자 내년 2400만명 예상…각국 실태▼

미국:시애틀에 있는 카페 토레파지오네이탈리아는 2주전 종업원 구인광고를 냈다. 급료는 겨우 시간당 7∼8달러. 그런데 무려 100여통의 이력서가 쇄도했다. 지난해 이맘 때 같은 광고에 2주동안 단 4통의 이력서만 왔던 것과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더구나 이번 지원자 중 70%는 웹 디자이너에서부터 아마존닷컴의 고객상담원에 이르기까지 하이테크 직종 출신의 고급 인력이 태반이었다.

댈러스의 한 회사에서 연봉 8만5000달러를 받았던 펜 호이트는 지난해 초 더 많은 연봉을 받고 닷컴회사로 옮겼다가 6개월 후 또 전직했다. 직장 옮기기는 쉬웠다. 헤드헌터 업체에 의뢰해 12개 회사와 인터뷰를 하고 그중 마음에 드는 곳을 골랐다.

그는 5월에 해직됐지만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새 직장을 곧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300통의 이력서를 보내는 동안 그를 받아주는 곳은 지금껏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는 6개월째 실직자 신세다.

테러, 전쟁, 탄저균 등 우울한 뉴스에 짓눌려 있는 미국 사회에 실업이 또 하나의 무거운 시름을 던지고 있다.

미 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10월 한달간 41만50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바로 전달의 21만3000명에 비해 약 2배나 많다. 실업률은 9월 4.9%에서 10월 5.4%로 껑충 뛰었다. 0.5%포인트의 상승폭은 구조조정이 강도높게 진행됐던 1980년 5월이후 21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미국의 실업난이 이처럼 악화되는 것은 비단 9·11 테러 때문만은 아니다.

IT산업의 침체와 경기불황으로 제조업에서는 이미 지난 15개월동안 100만명 이상이 해직되는 등 고용상황이 악화일로를 걸어 왔다. 여기에 9·11테러가 결정타를 날린 셈.

특히 큰 타격을 받은 부문은 서비스산업. 10월 한달간 호텔 항공 관광 등 서비스업계에서 무려 11만명이 해직됐다. IT산업의 고용상황도 계속해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실리콘 밸리가 소재한 샌타클래라 카운티의 9월 실업률은 5.9%로 지난해 9월 1.8%의 3배로 급증했다.

이번 실업난은 블루칼라뿐만 아니라 중산층에도 타격을 주고 있는 점이 또 하나의 특징. 미 일간 월스트리트 저널지는 5일 “지난 1년간 관리직 전문직 등 실업자가 63%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이기홍기자·워싱턴〓한기흥특파원>sechepa@donga.com

일본:6일 오전 6시 도쿄(東京)의 대표적인 인력시장인 우에노(上野) 산야(山谷). 하루치의 일감을 찾아 나선 실업자들이 북적거리고 있다. 샐러리맨 차림의 중년 남자들도 최근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 지역 노동센터 관계자는 “구직자는 2,3년 전보다 20%가량 늘어난 반면 일감은 경기침체로 20%가량 줄었다”며 “정리해고를 당한 샐러리맨 구직자들이 노무직 일감도 얻지 못해 허탕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한때 ‘종신고용’신화를 자랑했던 일본에서도 실업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9월 실업률은 전달보다 0.3%포인트가 뛴 5.3%로 사상 최고치다. 대형 전자회사들의 구조조정도 한 원인이었다. 미 테러참사와 광우병 파동의 영향이 반영되기 시작하면 실업률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노동성은 우려하고 있다.

특히 1년 이상 직업을 찾지 못한 장기실업자가 80만명을 넘어선 것이 걱정거리. 아예 취직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젊은이가 급증해 이들을 통칭하는 ‘프리터’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미국 정보기술(IT)산업의 하청기지 역할을 했던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들도 고용 사정이 악화되고 있다. 대만은 국내 경기침체와 무역 및 산업생산성 하락으로 9월 실업률이 사상 최고치인 6.25%를 기록했다.

유럽:만성적인 고실업 상태인 유럽의 실업 문제도 최근 더욱 나빠지고 있다. 지난 2,3년간 신자유주의 영향으로 경기가 호전되면서 상황이 좋아지는 듯 했으나 최근 들어 실업률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독일의 실업자는 10월 현재 371만명인데 올 겨울 400만명으로 불어날 전망. 프랑스의 실업률은 6월 8.8%에서 9월 9.1%로 계속 높아졌다. 엘리자베트 기구 프랑스 노동장관은 “미국 테러사건이 소비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기업이 투자를 결정하는데 부담을 주고 있다”며 실업난이 계속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도쿄〓이영이특파원·파리〓박제균특파원>yes202@donga.com

▼전문가 전망▼

경제 전문가들은 미국의 실업 상황이 내년 중반 이후에나 호전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 바클레이 캐피털사의 수석경제분석가인 헨리 윌모어는 “미국 경제는 내년 상반기 중 회복 추세로 돌아설 전망이지만 실업은 후행지수이므로 내년 중반 이후에나 호전될 것”이라며 “내년 상반기 중에 미국 실업률이 최고 6.5%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노동연구원 전병유 연구원은 “내년 하반기 이후 미국을 필두로 세계 경기가 나아질 것이라는 예상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세계 노동시장의 불안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개발도상국은 더 어려울 전망. 국제노동기구(ILO)는 “세계 전체에서 한해에 새로 생기는 일자리는 4000만개인데 비해 새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사람은 4800만명에 이른다”며 “앞으로 10년간 신규 노동시장 진입자 중 65%가 아시아에서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ILO는 또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 내년 말까지 2400여만명의 실업자가 추가로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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