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최동진/한일 공조 회복 더 미룰 순 없다

  • 입력 2001년 10월 22일 18시 28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몇 시간에 걸친 짧은 방한 뒤에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가히 방한 파동이라 할 만하다. 방한 그 자체에 대한 찬반론부터 과거사 사죄의 수위, 역사교과서 문제를 비롯한 몇 가지 민감한 현안 문제 해결의 진전 여부, 대일 보복 조치 철회의 적절성 여부, 심지어 고이즈미 총리의 서대문 독립공원 발언의 왜곡 여부 등 참으로 ‘말 많고 탈도 많은’ 방한이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인한 한일간의 논란과 감정싸움은 1981년 시작되었고 그 당시 제1차 역사교과서 파동의 실무국장이었던 필자로서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똑같은 일이 한일간에 지속되고 있는 데 대해 착잡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 양국의 국제적 위상이나 양국간 경제 통상 관계 규모, 국제 무대에서의 폭넓은 양국간 협력의 필요성 등은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진 지금도 일본의 과거사 인식과 한국인의 대일 감정만은 20년 전에 비해 달라진 게 없고 오히려 어느 면에서는 더 나빠진 듯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취임 직후부터 여러 번 방한을 희망해왔던 것으로 알려졌고, 특히 지난 9월 방한 희망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에서 역사교과서 문제와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 해결을 절대적인 선결 조건으로 제시했었다.

이것은 인접 우호국 정부 수반이 전례에 따라 최초의 취임인사 대상국으로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데 대해 외교적 무례에 가까울 만큼 지난(至難)한 선결조건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러다가 중국이 먼저 고이즈미 총리의 방중을 받아들이자 우리 정부가 부랴부랴 선결조건에 상관없이 그의 방한을 수락한 데 있는 것이다.

즉 애초부터 정부가 고이즈미 총리 방한 실현은 곧 선결조건 해결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국민에게 부풀려 주었던 것이 문제였다.

다시 말하면, 고이즈미 총리 방한은 그 자체가 현안문제 해결의 결과로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문제 해결의 진지한 시발이 될 수 있다는 의미를 처음부터 부여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랬으면 방한 자체에 대한 논란도 적었을 것이고, 더욱이 정부가 그 동안 교과서 문제로 내놓았던 여러 보복조치들을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거둬들이는 우(愚)를 범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한일간에는 교과서나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가 전부는 아니다. 물론 일본인의 역사인식 문제가 양국 관계 재정립의 근본이긴 하지만 그러나 양국 간에는 중요한 다른 과제들이 너무나 많다. 대북 문제를 포함한 국제적 공조 협력 관계가 그렇고, 경제 관계 또한 소홀히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월드컵 공동 개최 시기도 얼마 남지 않았고, 특히 테러 사태 이후의 긴박한 국제적 상황 변화 속에서 인접 우호국 수뇌간에 대화가 없다는 것은 그리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최동진 (전 주영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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