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김일영/美공습 신속-상세보도 압권

  • 입력 2001년 10월 12일 18시 36분


정쟁(政爭)과 전쟁이 극적으로 교차한 지난 2주일이었다. 추석 전부터 지면을 달구었던 ‘이용호 게이트’ 관련 기사는 연휴 이후에도 관성을 유지했다. 그러나 8일 새벽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이 시작되면서 국내 문제는 뒤로 밀리고 전쟁 관련 기사가 신문의 전면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정쟁과 전쟁 기사가 지면에서 서로 땅따먹기를 하고 있는 동안 신문은 두 사안 사이에서 균형을 지키는 운영의 묘가 아쉬웠다.

미국의 공습이 한국 시간으로 8일 오전 1시40분에 개시됐으니 신문사가 얼마나 북새통이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미 짜여진 판을 완전히 갈아엎고 공습 관련 기사로 10개면을 채운 새로운 신문을 발행하기까지 동아일보사가 보여준 신속성과 기민함에 경의를 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역에는 공습기사가 실리지 않은 신문이 배달되고 말았는데 9일자 신문에서 사고(社告)를 통해 그 점을 인정하고 사과한 솔직함도 돋보였다.

테러는 분명 인류의 공적(公敵)이다. 그리고 미국의 대테러 전쟁이 우리와 무관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한국이 직접 전쟁을 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냉철하게 국익이라는 관점에서 이번 전쟁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공습의 정당성을 문제삼은 두 기사가 당위성 위주의 보도에 균형을 잡아주었다.

8일자 A7면의 ‘미 보복공격 정당성 문제없나’와 11일자 A6면 여론마당에 실린 ‘미국의 국익 챙기기 심하지 않나’가 바로 균형추였다. 또한 이번 공습이 한국의 정치 경제와 대외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다각도로 분석한 기사(8일자 A8면, 9일자 A12면)와 이에 대한 국내 기업과 금융권의 대응 전략을 심층 보도한 기사(9일자 A15면) 역시 동아일보가 전쟁을 주체적으로 소화하는 역량을 보여준 것이었다.

우려되는 점은 전쟁 기사가 국내 정치쟁점을 가리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폭격에 정신을 빼앗긴 사이에 안정남(安正男)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잊혀진 인물이 되고 있다. 이용호, 여운환, 김형윤 등과 아직 베일에 가려진 배후의 실세들 역시 전쟁기사가 지면을 도배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미소짓고 있을 것이다.일반 국민의 기억력은 짧더라도 신문은 한층 긴 호흡으로 사건을 계속 추적해 보도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방한을 수용하자마자 일본은 남쿠릴열도에서 한국 어선의 꽁치조업을 금지하도록 뒤통수를 쳤다. ‘러시아에 속고 일본에 차인’ 해양수산부와 외교통상부의 무능을 심층 보도한 11일자 A2면 기사는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 기사 역시 단발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보도할 필요가 있다.

11일자 A29면 ‘한국 청소년의 어른에 대한 존경심, 아태지역 17개국 중 꼴찌’ 기사는 아쉬움을 남겼다. 정권이 바뀌면 과거부터 부인하는 것이 한국의 정치관행이다. 이런 악습이 청소년이 어른을 존경하지 않는 습성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면 이 기사는 사회면에 더 비중 있게 다뤘어야 한다고 본다.

김일영<성균관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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