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임재해/상혼에 짓눌린 전통문화

  • 입력 2001년 9월 26일 18시 28분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는 대문에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글이 붙어 있는 집이 있었다. 집주인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한복을 입고 대청마루에 앉아서 고서(古書)를 읽는 모습을 담 너머로 겨우 볼 수밖에 없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선비다운 풍모여서 대문에 들어설 엄두조차 내지 못했지만, 섭섭하기는커녕 이 집만 보고도 하회마을을 다 본 듯 가슴이 벅찼다. 하회 어른들의 삶이 꿋꿋하게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장터로 변해버린 하회마을▼

그런데 이 집 대문조차 이제는 개방되는가 했더니 벌써 밥집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누구든지 대청마루를 차지하고 부침개를 안주 삼아 막걸리 잔을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이를 보고 하회도 별수 없구나 하는 사이에, 하회는 온통 민박집과 밥집으로 아예 장터마을을 방불케 되었다.

하회에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다녀가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체면도 염치도 없이 관광객 접대로 돈벌 궁리에 몸살을 앓게 된 것이다. 여왕의 발길을 따라 대단한 전통마을인 줄 알고 하회를 찾아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손사래를 친다. 보다 못한 방문객들이 여기저기 고발의 글을 올리고 ‘안티 하회마을’을 주장할 지경에 이르자, 당국은 뒤늦게 불법건물을 철거하느라 주민들과 격렬한 다툼을 벌였다.

하회가 한국 민속마을 중 첫째로 꼽히듯이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작년에 한국축제 1위였다. 이 평가는 내게, ‘역시 우리는 진정한 축제가 없구나’하는 사실을 절감케 하는 증거로 인식되었다. 오죽했으면 문화재로 지정된 탈춤을 중간만 뚝 잘라서 보여주는 이벤트를 두고 축제로 인정하고, 게다가 가장 훌륭한 축제로 평가했겠는가 하고 생각하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것도 해마다 같은 것을 식상하도록 보여줄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주체가 되는 탈춤 공연은 없고 한결같이 전수자들에 의한 동원된 탈춤을 보여주는 행사가 아닌가. 한갓 기획이벤트이자 불과 4년째 하는 조작된 페스티벌을 축제 1위로 평가한 데에는, 탈춤은커녕 축제가 뭔지조차 모른 채 이벤트를 축제로 착각하는 관광학자들과 관변 인사들이 문화행정을 좌우한 폐단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유교문화축제도 퇴계 탄신 500주년 기념의 기획 이벤트라는 점에서 탈춤축제와 다르지 않다. 유교문화의 핵심은 선비정신이다. 선비정신은 벼슬자리보다 초야에서 학문을 즐기며, 세태에 영합하여 부귀영달을 꾀하기보다 꼿꼿하게 지조를 지키는 데서 빛이 난다. 선비들이 목숨을 걸고 왕정의 잘못을 지적하는 상소를 올린 것이 좋은 예이다. 유교문화축제가 그런 정신을 살리는 쪽으로 가고 있는지 장담하기 어렵다.

왜냐 하면 학술대회에 참여하는 퇴계학 관련 학자들조차 논문을 어떻게 잘 발표할까를 궁리하기보다 누가 이를 주도할 것인가 하는 헤게모니 다툼으로 등 돌리기를 하기 때문이다. 다른 행사도 특정인이 축제를 통해 사익을 챙기거나 위선사업을 할 작정으로 덤비니, 퇴계 스스로 가장 경계한 퇴계의 상품화로 치닫게 되어 오히려 반(反)퇴계적이고 비유교적인 행사가 될 우려마저 보이는 것이다.

그 원인은 분명하다. 문화적 전통을 지키고 가꾸려는 생각보다 이를 통해 이익을챙기려는욕망이앞서있는탓이다.상업적이득과신분상승을 위해 왜곡해 놓은민속문화를학계에서는‘민속(folklore)’이라 하지 않고 ‘가짜 민속(fakelore)’이라고 일컫는다. 유교문화든 민속문화든 전통(傳統)문화가 곧 돈을 끌어 담는 전통(錢桶) 문화로 변질되면 우리는 단호하게 가짜 전통으로 규정하고 비판해야 마땅하다.

▼답사-체험 위주 문화관광을▼

당장의 욕망 때문에 자연환경을 오염시키고 자연자원을 고갈시키듯이, 같은 이유로 우리는 지금 문화산업 또는 문화관광이라는 가짜 문화의 논리를 들먹이며 지역문화를 훼손시키고 문화유산을 돈으로 바꾸는 일에 골몰하는 건 아닌지 성찰할 일이다.

당대의 문화를 창조적으로 생산해 문화유산에 더 보태지는 못할망정 조상들의 문화유산을 팔아먹느라 문화산업이 곧 문화상업이 되고 문화관광이 곧 문화강간이 되어서야 쓰겠는가. 문화산업은 문화생산이자 문화창조이며, 문화관광은 문화답사이자 문화체험 쪽으로 가야 문화의 세기를 제대로 열어갈 수 있다.

임재해(안동대 교수·민속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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