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정원 간부의혹도 특검에

  • 입력 2001년 9월 25일 18시 54분


검찰이 특별감찰본부를 발족시킨 지 사흘도 안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여당이 특별검사제를 수용한 것은 검찰로서는 곤혹스러운 일이다. 여권은 날이 갈수록 증폭되는 이용호 게이트를 검찰 자체 수사에 맡겼다가 옷로비 사건의 전철을 밟느니 부담스럽더라도 특별검사제를 통해 의혹을 제거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특별검사제는 이미 두 차례의 경험이 있고 선진국에서도 논란이 있는 제도이지만 사태가 이 지경에 다다른 것은 검찰의 자업자득이라고 봐야 한다. 검찰총장의 동생이 연루되고 검찰 고위 간부들이 의심을 받는 상황에서 검찰의 자체 조사로는 의혹을 잠재우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여야가 특별검사제의 세부적인 절차에 합의하고 법이 제정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므로 대검 중앙수사부와 특별감찰본부의 활동이 중단돼서는 안된다. 특별검사가 활동을 시작할 때까지 검찰로서는 이용호 게이트의 진상을 밝히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이용호 게이트의 파장이 워낙 거세다 보니 김형윤 전 국가정보원 경제단장 관련 사건이 묻혀 버리고 있다. 검찰은 김 전 단장이 정현준씨 사건 수사 때 동방금고 측으로부터 5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잡았으나 유야무야 처리한 의혹을 받고 있다. 권력형 비리의 석연치 못한 내사 종결이라는 측면에서 성격이 비슷한 사건이므로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고 이 사건도 특별검사의 수사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이용호 게이트는 감찰과 수사가 한창 진행중인 상황에서 여야가 특별검사제에 합의한 모양새는 조금 이상하지만 검찰로서는 오히려 배수진을 치고 수사를 펼 수 있는 기회를 만났다. 특별검사제 도입을 전제로 한 감찰과 수사 앞에서 내부의 저항이나 외압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국정원 간부의 금품수수 관련 사건도 마찬가지다.

여권 일각에서는 ‘이용호 비망록’은 존재하지 않고 특별검사제를 도입해도 새로 나올 게 없어 피할 이유가 없었다고 하지만 권력형 비리 사건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양파껍질 까기처럼 수사를 해나가다 보면 겉에서 안보이던 썩은 부분이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특별검사가 검찰에서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권력형 비리를 찾아내거나 검찰과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린다면 검찰은 두 번 죽게 된다. 반면에 검찰이 성역 없는 공명정대한 수사를 한다면 특별검사제는 확인과 검증의 의미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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