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권 위기' 못 느끼는 정권

  • 입력 2001년 9월 24일 18시 45분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의혹이 불거져 나오는 ‘이용호 게이트’는 특정 지역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하는 정권이 지역 연고의 사적(私的) 사슬을 제도와 법치(法治)로 엄정히 끊어내지 못하면 정권은 물론 나라 전체를 위협할 수 있는 총체적 부패를 방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단순히 주가 조작이나 횡령이 아니다. 정권의 위기이자 나라의 위기다. 문제는 정권측이 이번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읽고 있느냐는 점이다.

한화갑(韓和甲) 김근태(金槿泰) 두 민주당 최고위원의 발언은 바로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못하는 정권의 불감증을 지적하고 있다. 한 최고위원은 “권력의 핵은 청와대인데 밖에서 일어난 일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태풍이 몰려오는데도 그 핵인 권력 핵심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최고위원 역시 “당과 정부, 청와대가 현재의 위기 상황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특정 정파와 몇몇 개인에 의한 권력의 사유화(私有化)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두 최고위원의 발언을 그들 개인의 정치적 발언쯤으로 해석하려 들거나 지역 연고와 부패 문제가 과거 정권에서는 없었느냐는 식의 반응이 권력 핵심의 내부에 깔려 있지 않느냐는 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번 사건을 대하는 정권측의 대응이 이렇듯 미지근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정권의 위기불감증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가을 이래 계속된 집권 여당 내부의 국정쇄신 인적쇄신 요구는 철저하게 묵살됐다. 최근 대통령비서실장을 당 대표로 내려보내는 인사에서 보인 전횡(專橫)은 오히려 여론을 거슬러 가는 ‘오기 정치’가 아닌가하는 느낌마저 줄 지경이다. 인적쇄신의 대상으로 거론돼 온 ‘특정 계파’는 사실상 청와대와 당을 장악했고, 지난 대선 직전 임명직은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가신그룹’은 정권 내내 자리 옮김으로 건재를 과시한다. ‘권력의 사유화 현상’이다.

그 성격이 다르다고 강변할지 모르나 ‘이용호 게이트’는 이러한 권력 행태에 기생한 복합적 부패의 한 양상일 뿐이다. 검찰의 특정 지역 출신 요직독점 인사가 이번 사건과 무관치 않으리라는 분석이 이를 뒷받침한다. ‘끼리끼리의 커넥션’에서는 위기의 경고음이 들리지 않는다. 태풍의 징조도 감지되지 않는다. 이제라도 이 정권은 당면한 위기의 본질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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