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식의 과학생각]첨단 문명과 테러의 '잘못된 만남'

  • 입력 2001년 9월 19일 19시 29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의 심장부를 겨냥한 테러집단은 납치한 민간 여객기를 초고층 건물에 충돌시키는 야만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대량 살상무기가 테러리스트의 수중에 들어갈 것을 염려해온 테러 전문가들로서는 민간 항공기가 자살폭탄용으로 사용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에 테러 대응전략을 전면적으로 수정하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보인다.

▼핵-생물무기 이어 컴퓨터까지▼

테러 행위에 동원될 가능성이 높은 대량 살상무기로 간주된 것은 생물무기와 핵무기이다. 생물무기는 핵무기보다 만들기 쉽고 비용이 적게 들어갈 뿐만 아니라 핵무기 못지 않은 인명 살상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테러리스트들이 군침을 삼킨다.

생물 테러리즘의 위력은 1995년 일본의 신흥 종교집단인 옴진리교에 의해 입증된 바 있다. 3월 어느 날 아침 출근 시간에 옴진리교가 도쿄 지하철에 신경가스를 방출해 16개가 넘는 역에서 출근자들이 들것에 실려 나갔으며 5500여명이 치료를 받았으나 12명은 끝내 목숨을 잃었다.

주로 개발되는 생물무기는 탄저균, 천연두균, 콜레라균 등 각종 세균이다. 이 중에서 탄저균이 가장 인기가 높다. 무엇보다 살상 능력이 위력적이기 때문이다. 탄저병이 발병한 뒤 하루 이내에 항생제를 다량 복용하지 않으면 80% 이상이 죽는다. 천연두의 사망률이 30%인 점에 비춰볼 때 치명적인 질병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탄저균 100㎏을 대도시 상공에 살포하면 수백만명을 죽일 수 있다. 핵무기 못지 않은 살상 능력임에 틀림없다.

생물무기의 출현은 테러 행위의 양상을 바꾸어 놓고 있다. 종래의 테러는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됐지만 옴진리교의 경우처럼 불특정 다수의 시민을 살상하거나 국제시장에서 경쟁자들을 골탕먹이기 위해 농작물에 병균을 퍼뜨리는 반사회적 행동이 늘어날 개연성이 높다.

7월 하순 미국 하원 국가안보소위원회에서는 생물테러 공격으로 미국이 불과 수주일 안에 붕괴 위기에 몰릴 수 있다는 가상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생물테러가 ‘만일’에서 ‘언제’의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 미국 안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핵무기 역시 테러리스트들이 조만간 제조 능력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핵무기로 테러 공격을 시도할 만한 집단은 이번 항공기 자살 테러의 배후 인물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을 포함해 130여개나 된다. 이들은 냉전체제 종식으로 별로 쓸모가 없어진 300만㎏의 방사성 물질을 노린다. 몇 ㎏의 플루토늄이나 우라늄만 있으면 핵폭탄 한 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테러 집단이 핵무기를 확보하는 것은 시간 문제인 것 같다. 테러리스트들이 방사성 물질을 구하는 방법은 밀수뿐이다.

5월 초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 인터폴(INTERPOL), 세계세관기구(WCO)가 개최한 핵 전문가 회의는 방사성 물질의 밀수 행위가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러시아의 군사시설에 보관돼 있는 핵무기 재료가 배고픈 병사들에 의해 구멍 뚫린 길고 긴 국경선 너머로 상당 부분 흘러나간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이 핵무기 원료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러시아에 22억 달러를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14%만 안전하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또한 세계 여러 나라의 원자력 연구소나 병원에서 도난 또는 분실된 방사성 물질이 테러리스트들에게 건네진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어쨌든 테러 조직이 핵무기로 무장하는 것은 예정된 수순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21세기에 기승을 부릴 제3의 테러는 사이버 공격이다. 국가의 기간 정보통신망을 해킹해서 프로그램을 파괴하거나 컴퓨터 바이러스를 살포하는 사이버 테러는 가상공간에서 일상사가 된지 오래됐다. 사이버 테러는 인명을 살상하지는 않지만 군사적 경제적 능력을 약화시킨다는 측면에서 국가 안보 차원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美테러 모방 가능성 배제못해▼

인류는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비행기 자살 테러리스트들의 공격 앞에 맥없이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았다. 일부 테러리스트들은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끌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다. 따라서 이번 테러를 모방한 만행이 빈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과학문화연구소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