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해지펀드에 무너진 '애국심 효과'

  • 입력 2001년 9월 18일 19시 12분


‘애국심이냐, 돈벌이냐?’

상상도 못할 테러로 4일 동안 문을 닫았다가 17일 재개장된 뉴욕증시에선 시장붕괴를 막으려는 쪽과 위기를 돈벌이 기회로 삼으려는 투기세력 사이에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다. 뉴욕증권거래소(NYSE) 거래량이 23억6934만주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것은 격전이 어느 정도였는지 잘 보여준다.

월가의 살아있는 전설적 투자자인 워런 버핏은 개장 전 “미국 경제가 테러 전보다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에 재개장과 함께 주식을 파는 것은 미친 짓”이라며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팔지 않겠다”고 애국심에 호소했다. 리처드 그라소 NYSE 회장도 개장 직전 2분간 묵념을 제의해 분위기를 잡았다.

이런 노력은 개장 초 다우지수가 40포인트밖에 하락하지 않아 성공하는 듯했다. 그러나 돈 냄새를 잘 맡기로 유명한 헤지펀드들의 공매도(空賣渡) 공세는 주식시장의 붕괴를 막으려는 개인투자자들의 기대를 산산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다. 공매도란 갖고 있지 않는 주식을 증권사에서 빌려 내다 파는 것. 주가가 100원일 때 100주를 빌려 판 뒤 50원으로 떨어지면 200주를 사서 100주만 갚으면 되기 때문에 주가하락이 예상될 때 유용한 투자기법이다.

헤지펀드들은 이날 증권사에서 주식을 빌리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4000만 달러를 운용하는 한 헤지펀드 매니저는 “증권사들이 대주를 거부하려는 담합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929년 대공황 때 모간그룹을 비롯한 대형투자은행들은 1억3000만달러라는 거금을 주식시장에 쏟아 부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폭락했고 다시 오름세로 회복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였다. 시장은 시장 나름대로의 논리에 따라 움직일 뿐이라고 한다. 주가 안정을 위해 애국심에 호소하거나 돈벌이에 나서는 사람들을 탓하기 전에 시장이 제대로 굴러가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홍찬선기자>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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