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일본 최고 지성의 독서법은?

  • 입력 2001년 9월 18일 09시 25분


독서광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책광(冊狂)과 지식광(知識狂)입니다. 비유하건데 오디어 마니아와 클래식 마니아의 차이와 같을 것입니다. 최근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청어람미디어)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책 내용에 앞서 저자가 흥미롭습니다.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61)씨입니다. 일본에서 유명한 지식광입니다. 그리고 책광이기도 합니다. 책에 소개된 저작 목록을 보면 화려하다는 말조차 무색합니다. 우주 생명과학, 오컬트부터 철학을 넘어 록히드 사건 등 일본의 각종 스캔들 사건에 대한 르포르타주까지.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수준이 해당 분야에 통달했다는 전문 연구자 뺨친다는 것이죠. 특히 르포르타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는 것은 일본 지식계에서는 공지의 사실입니다.(이 사람의 지적 편력과 깊이가 과연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으신 분이라면 ‘다키치바 다카시의 책의 세계’라는 사이트(www.ttbooks.com)을 방문해보셔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일본 제일이라는 동경대학에서도 인간론을 주제로 강의를 했는데 가히 반응이 폭발적이었나 봅니다. 우리로 치자면 도올 김용옥의 강의를 떠올리시면 딱 맞지 않을까 합니다. 학생들이 만든 팬사이트도 많이 생겼고, 이를 참지 못한 교수들이 만든 반(反) 다치바나 사이트도 꽤 있습니다. 아쉽게도 국내에는 이 사람의 책이 거의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본지 책 섹션인 <책의 향기> 9월 15일자에 소개된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가 거의 첫 소개라고 봐도 무방합니다.(청어람미디어는 다치바나의 대표작인 <우주로부터의 귀환>을 번역중이라고 합니다.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우주비행사가 겪은 체험을 취재해 이를 우주와 신의 존재와 연결시켜 풀어간 역작입니다. 월간 <아사히>에서 ‘일본을 아는 100권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는 방대한 독서편력을 자랑하는 다치바나가 쓴 ‘책과 인생’에 대한 에세이입니다.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왔고, 어떻게 읽어야할지를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이야기해줍니다. 현재 <독서의 역사> <독서의 기술> 같은 책이 번역되어 있지만 학술서의 분위기가 강합니다. 하지만 이 책의 경우는 현실적인 체험을 위주로 썼기 때문에 훨씬 살갑고 실용적입니다. 특히 어떤 책을 어떻게 골라서 봐야할지 모르는 분들-특히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 보시면 특히 좋을 듯합니다. 효율적인 서고 정리법, 자신의 서재 건물인 ‘고양이 빌딩’(일본의 명물이라고 하네요) 구조도까지 실려있습니다. 특히 마지막장인 ‘우주 인류 책’에는 일본 출판현실과 미래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예상이 실려있어 출판계 종사자들에게 적지않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다치바나의 지론은 “책은 만인의 대학”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책을 골라 어떻게 봐야할지는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다치바나 역시 그런 왕도는 없다고 단언합니다. 하지만 효과적인 독서법은 있겠지요. <아사히 저널>에 기고했던 다치바나의 독서법이 유용한 정보가 될 것 같아 알려드립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1, 7, 13번, 그리고 마지막 14번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실전’에 필요한 14가지 독서법>(pp.81-83) 공간이 얼마 없으므로 메모하는 식으로 글을 써 나가겠다. 먼저, 아래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일과 일반교양을 위한 독서와 관련하여 쓴 것으로, 취미를 위한 독서와는 무관함을 밝혀둔다. 1.책을 사는데 돈을 아끼지 말라. 책이 많이 비싸졌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책 값은 싼 편이다. 책 한 권에 들어있는 정보를 다른 방법을 통해 입수하려고 한다면 그 몇 십 배, 몇 백 배의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2.하나의 테마에 대해 책 한 권으로 다 알려고 하지 말고, 반드시 비슷한 관련서를 몇 권이든 찾아 읽어라. 관련서들을 읽고 나야 비로소 그 책의 장점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또한 이 과정을 통해 그 테마와 관련된 탄탄한 밑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3.책 선택에 대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실패 없이는 선택 능력을 익힐 수 없다. 선택의 실패도 선택 능력을 키우기 위한 수업료로 생각한다면 결코 비싼 것이 아니다. 4.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은 무리해서 읽지 말라. 수준이 너무 낮은 책이든, 너무 높은 책이든 그것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이다. 시간은 금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리 비싸게 주고 산 책이라도 읽다가 중단하는 것이 좋다. 5.읽다가 중단하기로 결심한 책이라도 일단 마지막 쪽까지 한 장 한 장 넘겨보라. 의외의 발견을 할게 될지도 모른다. 6.속독법을 몸에 익혀라. 가능한 한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섭렵하기 위해서는 속독법밖에 없다. 7.책을 읽는 도중에 메모하지 말라. 꼭 메모를 하고 싶다면 책을 다 앍고 나서 메모를 위해 다시 한 번 읽는 편이 시간상 훨씬 경제적이다. 메모를 하면서 책 한 권을 읽는 사이에 다섯 권의 관련 서적을 읽을 수가 있다. 대개 후자의 방법이 시간을 보다 유용하게 쓰는 방법이다. 8.남의 의견이나 북 가이드 같은 것에 현혹되지 말라. 최근 북 가이드가 유행하고 있는데, 대부분 그 내용이 너무 부실하다. 9.주석을 빠뜨리지 말고 읽어라. 주석에는 때때로 본문 이상의 정보가 실려 있기도 하다. 10.책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의심하라. 활자로 된 것은 모두 그럴듯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좋은 평가를 받은 책이라도 거짓이나 엉터리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11. ‘아니, 어떻게?’라고 생각되는 부분(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을 발견하게 되면 저자가 어떻게 그런 정보를 얻었는지, 또 저자의 판단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숙고해 보라. 이런 내용이 정확하지 않을 경우, 그 정보는 엉터리일 확률이 아주 높다. 12. 왠지 의심이 들면 언제나 원본 자료 혹은 사실로 확인될 때까지 의심을 풀지 말라. 13.번역서는 오역이나 나쁜 번역이 생각 이상으로 많다. 번역서를 읽다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머리가 나쁘다고 자책하지 말고, 우선 오역이 아닌지 의심해보라. 14. 대학에서 얻은 지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사회인이 되어서 축적한 지식의 양과 질, 특히 20,30대의 지식은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것이다. 젊은 시절에 다른 것은 몰라도 책 읽을 시간만은 꼭 만들어라.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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