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박희정/서울 추모공원 갈등 누구 탓인가

  • 입력 2001년 9월 17일 18시 35분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용어가 한국에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거버넌스는 ‘관리(management)’나 ‘행정(administration)’을 대체하는 새로운 통치모델로 국가나 사회의 공통 관심사에 대해 사회 각계의 행위자들이 참여해 서로의 이해를 표명하고 책임과 의무를 준수하면서 의견 차이를 조정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지방자치에도 거버넌스 이론이 그대로 적용된다고 볼 때 지역의 중요 문제를 결정할 때 단체장이 독단으로 결정하지 않고 지역사회의 모든 행위자들을 참여시켜 집단적으로 결정하고 집행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최근 서울시는 새로운 추모공원 부지를 선정하여 발표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 결정이 주민과 자치구의 참여와 동의 없이 이루어졌다며 백지화를 요구하였다.

그렇다면 서울시의 추모공원 입지 결정은 ‘잘못된 거버넌스’였는가?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해 관계자가 입지 결정 과정에 참여해 의사를 표명할 기회를 가졌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서울시의 추모공원 입지 결정을 주도한 추모공원건립추진협의회에는 시민단체(환경운동연합, 장묘문화개혁범국민실천협의회 등) 학계 종교계 언론계 시의회 등 다수의 시민대표와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또 후보지 선정 과정에서 3회에 걸쳐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공청회가 열렸고 몇 차례에 걸쳐 주민 대표들과 시장 면담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13개 후보지의 주민들은 자신들의 이해를 표명할 기회를 가졌다. 따라서 서울시는 ‘바람직한 거버넌스(good governance)’를 위해 노력한 것으로 판단된다.

다음으로 서울시와 서초구가 추모공원 입지 결정 과정에 어떤 방식과 행태로 접근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울시는 1998년부터 체계적인 조사 실시, 중장기 장묘정책 연구, 공청회를 통한 시민여론 수렴 등 합리적인 방법과 노력을 전개했다. 반면 서초구는 물리력 등 부정적인 정책수단에 주로 의존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공청회 진행 방해, 주민을 동원한 반대 집회 및 행사 불참시 벌금 부과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마지막으로 의견 차이를 좁히기 위한 노력에 있어서도 서초구는 ‘25개 구에 각기 소규모 승화원(화장장)을 건립하자’는 등 비현실적 주장만 되풀이했다. 물론 서울시도 추모의 집(납골당) 분산 배치에는 동의하면서도 승화원의 권역별 배치 방침은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 차이는 서울시와 서초구의 협상 과정에서 조정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서울시의 추모공원 입지 결정 과정을 ‘잘못된 거버넌스’로 비판할 수 있는 증거는 거의 없다. 따라서 서울시의 추모공원 입지 결정에 대해 주민 참여를 배제한 권위주의적 결정으로 매도하는 것은 ‘참여를 빙자한 지역이기주의의 옹호’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추모공원을 둘러싼 서울시와 자치구간의 갈등이 서로에게 이익을 주는 ‘윈-윈 게임’으로 발전돼 시민의 필수시설인 추모공원이 하루빨리 설치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 희 정(한국지방행정연구원 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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