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재창/국정감사를 왜 축소하나

  • 입력 2001년 9월 16일 18시 37분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미국에 가해진 이번 자살 테러 사건은 초강대국 미국의 뒤통수만을 후려갈긴 것이 아니었다. 지구촌 모두가 충격의 미망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만큼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무차별적인 대량 살상을 겨냥한 사건의 반인륜적 포악성이나 상상을 초월하는 의외성에 우리 모두가 허를 찔렸다.

▼美테러 대책 모색해야 할 때▼

그뿐만이 아니다. 이 사건이 펼쳐 놓는 기존의 지구촌 패러다임에 대한 공격적 파괴력은 일상의 질서를 송두리째 뒤엎기에 충분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결국에는 종교 내지는 문화권간의 충돌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나 기존의 국경이나 전쟁에 대한 개념으로는 더 이상 지구촌의 분쟁을 해석하거나 대처할 수 없다는 인식도 바로 이런 조망 위에 서 있다. 미국의 패권적 질서가 치명적인 권위 손상을 입었다거나 반미감정이 왜 생겨나는지를 미국이 먼저 성찰해야 한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에서 제기된다. 미국의 대외정책이 보다 더 보수화의 물결을 타게 될 것이라는 견해도 새로운 질서의 태동을 예고하는 실마리 중의 하나다.

따라서 이 사건으로 우리가 겪게 될 파장과 변화는 현 시점에서 이를 가늠해 본다는 일 자체가 무모할 정도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국내 경제는 더욱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게 되었고 이제 겨우 물꼬를 다시 트는가 했던 남북문제도 순탄하게 풀려나가기는 어렵게 되었다. 나라의 어려움이 일상의 수준을 넘고 있다는 뜻이다. 어느 때보다도 나라가 처한 환경을 다시 진단하고 국정 관리의 목표를 재조정하며 국가 행정작용의 타당성을 점검하는 일이 중요하게 되었다.

순발력 있게 변화하는 환경에 신속히 대처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런 만큼 관료적인 질서나 관성의 법칙에 순응하는 행정부의 비탄력적인 문제 해결 양식에 국정 운영의 과제를 모두 일임해 둘 수는 없다. 격동과 파란의 시대를 이겨내기 위한 국민적 합의의 도출이나 창의적 대안의 모색도 시급한 과제다. 무엇보다도 지금 우리가 처한 이 시대의 과제와 의미를 국민 모두가 숙지할 수 있도록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일이 필요하게 되었다.

나라와 국민간의 관계를 연결해 주는 국회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도 긴요하다는 의미이다. 특히, 국회의 대 행정부 통제 기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현 시점에서 정부의 정책 지향점이 과연 무엇인지를 점검해 보고 그런 목적가치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행정부가 수행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검토해 보며 이에 대한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회는 최근 때마침 진행 중이던 국정감사마저 축소하거나 중단하는 기미를 보였다는 것이다. 아무리 이번 테러 사건이 주는 심리적 공황이 컸다고는 하지만 이는 시대 환경의 변화가 우리의 정치권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라고밖에는 달리 해석할 방도가 없다. 혹여 나라가 어려운 때 국회가 한가로이 국정감사나 하고 있어서야 되겠느냐고 생각한 결과가 아니기를 빈다. 만일 그렇다면 이야말로 소가 웃을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야당은 지금 뭐하고 있는가▼

국정감사는 행정부를 괴롭히거나 정당한 행정 작용을 방해하자는 것이 아니다. 행정의 질적 수준을 높여 국정 운영의 대국민 적실성 정도를 개선하자는 데에 일차적인 목표를 두는 작업이다. 거대한 풍랑을 만나 우왕좌왕하고 있을 선원들에게 항로를 제시하며 격려하는 일은 조타수에게 맡겨진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인 것이다. 특히 내년에는 대통령선거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만일 금년에 국정감사가 제대로 실시되지 않는다면 현 정부에 대한 의회의 종합적인 평가는 사실상 종료되는 셈이다. 책임정치의 구현을 위한 최소한의 요건마저 충족시키기 어렵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의 국회는 야당이 지배하고 있지 않는가. 행여 이번 사건을 기화로 국정감사가 태만의 늪에 빠진다면 이는 야당의 무사안일주의 탓이라고밖에는 달리 바라볼 길이 없다. 이런 격랑의 시대일수록 감시의 눈에 불을 켜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박재창(숙명여대 교수·의회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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