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이영두/문화산업의 뿌리는 순수예술

  • 입력 2001년 9월 10일 18시 22분


한국의 산업정책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받고 있다. 매킨지보고서는 한국경제가 더 이상 요소 투입을 기반으로 성장을 지속할 수 없고, 과거의 성공방식에 의존해서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문화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가 동시에 중시되는 21세기 지식문화사회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국가 산업전략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문화산업은 지식집약형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특히 부존자원이 부족한 한국에는 가장 적합한 미래형 청정산업이다. 문화상품은 경제적 효과뿐만 아니라 국가이미지 제고라는 2차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최근 중국, 몽골, 동남아에서 일고 있는 한류열풍은 한국 문화산업의 세계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산업의 예를 보자. 세계 영화시장의 규모는 630억달러(약 75조6000억원)로 이중 85%를 미국이 점유하고 있다. 영화산업은 미국에서 무기산업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거대산업이다. 반면 한국의 영화 내수시장은 2700억원 정도에 불과해 애니메이션, 비디오, 게임, 캐릭터 등의 분야에 창구효과(window effect)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영화시장보다 더 큰 2622억달러(약 315조원) 규모의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한국은 세계 3위의 애니메이션 생산국의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하청제작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문화산업의 내수시장은 통계자료조차 미비한 상태지만 성장 잠재력은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소규모 국내시장만 바라볼 수는 없으며 거대한 세계시장에서 어떻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과제이다. 한국영화사상 최대의 흥행기록을 세운 ‘쉬리’와 그 기록을 깨뜨린 ‘공동경비구역 JSA’ ‘친구’ 등을 통하여 가능성은 입증된 셈이다.

그러나 당장 가시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영화와 같은 응용예술 문화산업 중심의 발전만으로는 세계시장에서 지속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는 없다. 응용예술 문화산업의 시나리오와 콘텐츠는 미술, 음악, 연극, 문화유산 등 순수예술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단순한 이미지 합성이나 컴퓨터 조작에 의하여 독창적인 응용예술 상품은 만들어질 수 없다. 순수예술의 기반 위에서 응용예술은 발전할 수 있고 경쟁력도 확보될 수 있다.

미국의 뉴욕 현대미술관(MoMA)을 위시한 다양한 문화공간이나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 퐁피두센터 등 순수예술 영역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문화대국, 문화산업 수출국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문화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순수와 응용 두 영역이 상생·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이 같은 방식으로 문화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한다면 한국은 세계 문화상품 시장을 주도하는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경제성장과 문화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효과도 얻게 될 것이다.

이 영 두(동주대 교수·예술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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