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렇게 봤다]한수진이 본 '지옥의 묵시록-리덕스'

  • 입력 2001년 9월 6일 18시 50분


“‘지옥의 묵시록-리덕스’를 보라고? 그 많은 영화 중에서 하필….”

난, 원고 청탁을 받으면서 솔직히 반갑지 않았다. 여러 해 전 ‘지옥의 묵시록’을 보면서 이미 코폴라 감독에게 ‘당할 만큼 당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압권인 첫 전투 장면이 현미경을 들이대듯 전쟁의 공포와 참혹함을 묘사하고 있다면, ‘지옥의 묵시록’은 전쟁의 공포를 ‘끈적끈적하게’ 풀어낸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나는 전쟁이, 그리고 전쟁 앞에 처참하게 무릎꿇고 알몸을 드러내는 인간의 사악함이 몸서리치게 싫었다.

“나는 네이팜탄 냄새가 좋아. 마치 승리의 냄새처럼 느껴지니 말이야.”

▼끈적끈적한 전쟁의 공포▼

베트남 해안 마을을 네이팜탄으로 초토화시키는 헬리콥터 부대장 킬 고어 대령(로버트 듀발)이 내뱉는 이 말.

‘언제라도 악마와 악수할 수 있는, 그리고 자신이 악수하고 있는 상대가 악마라는 사실조차 쉽게 잊을 수 있는 인간의 사악함’이 영화의 메시지가 아닐까. 고어의 이 대사는 가장 효과적으로 이 메시지를 드러낸다.

코폴라 감독은 첫 개봉작으로 성이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지옥의 묵시록-리덕스’는 혐오를 증폭시키기 위해 몇 가지 장치를 더 동원했다.

전장을 탈출할 연료를 얻기 위해 장병들에게 몸을 파는 플레이 걸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베트남 정글 속에서 몸부림치는 모든 사람들은 악마에게 한 조각 한 조각 자신의 영혼을 쪼개 판다. 그나마 그들이 영혼을 판 대가로 받는 것은 본질적 탈출도 아니다. 마약처럼 덧없는 순간의 도피일 뿐이다.

무엇보다 코폴라 감독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인간의 사악함이 집단적으로 나타났을 때 생기는 ‘광기’인 것 같다. 이 추정이 맞다면 코폴라의 궁국적 목표물은 바로 ‘미합중국 정부’라는 이름의 집단적 광기이다.

커츠 대령(말론 브란도)을 제거하기 위해 정글로 떠나는 윌라드 대위(마틴 쉰)는 이를 극적으로 증명하는 도구다.

▼감독이 겨냥한 건 美정부▼

관객들은 윌라드가 커츠를 찾아가는 뱃길 곳곳에서 인간이 내뿜는 사악함을 만나고 이를 깨닫는 모습을 통해 “저 사람이 뭔 일을 해주겠구나”하는 한 조각 희망을 갖는다. 하지만 결국 윌라드는 그저 임무를 완수하는 일개 병졸일 뿐이다. 전쟁을 지배하는 거대한 힘 앞에서 그는 소모품일 뿐이다.

이쯤에서 관객은 끈적거림에 불쾌감과 슬픔까지 느낀다. 코폴라 감독이 의도한 것이다.

▼바그너음악 영상의 힘 더해▼

덧붙이자면 이 영화의 보너스는 배경 음악. 리덕스가 새롭게 선보인 음악들은 영상의 중압감에 몇 배의 힘을 더한다.

헬리콥터 소리를 휘감고 퍼지는 바그너는 그것만 따로 떼어내도 하나의 작품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고 싶은 사람은 비디오로 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한수진(SBS 8뉴스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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