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최흥식/지배구조 개선 현실적 대책 필요

  • 입력 2001년 9월 5일 18시 33분


한국 기업의 주가는 비슷한 외국 경쟁 기업의 주가보다 현저하게 저평가돼 있으며 이러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낙후된 기업 지배구조 때문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4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보도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는 아시아에서 최하위이며 경영 투명성은 중국 다음으로 좋지 않다.

기업들이 투명하고 보편 타당성을 지닌 지배구조를 갖기 위해서는 정책 당국 차원에서 모범적 지배구조를 가진 기업을 우대하는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기업 스스로 지배구조 개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최근 기업 지배구조 평가원 설립 계획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재계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정부가 주도할 경우 경영의 자율성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대해 정책 당국은 현재 증권거래소에 설치돼 있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위원회를 확대 개편해 개별 기업의 지배구조를 평가해 시장에 제공함으로써 기업의 자발적 경쟁을 유도하고 투자자들이 이 정보를 주가에 반영함으로써 시장 규율을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기업 지배구조 평가는 강제 사항이 아니며 산업 및 기업 특성을 무시한 획일적인 평가는 실시하지 않을 계획이라는 입장도 밝혔다.

현재의 기업 지배구조 개선위원회에 공익대표와 전문가를 대폭 확충해 위원회를 재구성한 뒤 각 산업 및 기업에 맞는 지배구조 형태를 개발해 이에 근거해서 상장기업의 지배구조를 진단하고 우량기업을 우대하는 방안을 강구한다면 재계가 우려하는 자율경영 침해나 관치 금융의 위험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향후 민간기관에도 기업 지배구조 평가와 관련된 조직을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 관 주도의 기업 지배구조 평가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기관 투자가를 중심으로 투자하고 있는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해 이를 주가에 반영함으로써 고객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기업 지배구조 평가 업무가 활성화되어 있다. 미국의 증권감독원(ISS)은 매년 세계 주요 기업의 지배구조를 평가해 모범 기업에 대해 시상하는데 올해에는 삼성전자가 이 상을 받았다. 영국은 800개 회사의 지배구조 내용을 평가해 공표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홍콩도 정부 주도로 소액투자자협의회를 설립해 모든 상장기업의 지배구조를 평가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기관 투자가의 의결권 행사를 1998년 9월 제한적으로 허용했으나 아직도 활성화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여건상 당분간 기관 투자가들이 기업 지배구조 개선 업무를 선도적으로 수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기관 투자가를 중심으로 한 시장의 힘에 의해 기업 스스로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현실 여건을 고려할 때 증권거래소에 의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 지원기구 설립은 차선책이 될 수 있다.

아무쪼록 기업 지배구조 개선 지원기구의 설립을 계기로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가 선진화해 세계 증시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사라지기를 기대한다.

최흥식(한국금융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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