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암살

  • 입력 2001년 9월 5일 18시 29분


암살(暗殺)을 뜻하는 영어 ‘assassination’의 어원은 아랍어 ‘해시신(hashishin)’에서 유래됐다. 해시신이란 마약의 일종인 해시시를 먹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11세기 말 페르시아의 비밀결사 조직이 해시시를 먹고 정부 요인을 암살했다고 한다. 어원에서도 느낄 수 있듯 암살이란 말에는 무언가 어둡고 음모적인 분위기, 법의 테두리 밖에서 행해지는 일이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암살은 과거 정보기관이 애용하던 수단이기도 했다.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은 공산주의의 확산을 저지한다는 명분 아래 제3세계 여러 나라의 국내 정치에 개입하고 정치 지도자에 대한 암살 공작을 시도했다. 베트남 고 딘 디엠 정권의 붕괴(1963년), 칠레 아옌데 정권의 붕괴(1973년)가 암살 수단을 통해 미국에 부담스러운 정권이 제거된 예들이다. 반면 ‘미국의 앞마당’ 쿠바에서 1959년 집권한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암살 공작은 끝내 성공하지 못해 미국 비밀공작사(史)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기록되기도 했다. 이 모두가 세계가 미국과 소련의 두 진영으로 갈려 치열하게 경쟁하던 냉전 시절의 얘기다.

▷문제는 미국이 제3세계에서 수행했던 암살 공작의 상당수가 결과적으로는 독재정권이 들어서는 데 기여했다는 점이다. 이란의 민족주의자 모사데크 정권을 전복시키고 들어선 팔레비 왕조(1953년), 칠레 아옌데 정권을 전복시키고 집권한 피노체트 군부 정권이 대표적인 예다. 미 CIA가 과거 우리나라의 군부 정권을 지속적으로 지원했다는 것도 ‘정설’처럼 돼 있다. 민주주의를 신봉한다는 미국의 대외공작이 제3세계 국민에게는 오히려 반(反) 민주를 가져온 셈이다.

▷1949년 6월 백범 김구(白凡 金九)를 암살한 안두희(安斗熙)가 주한미군 산하 방첩대(CIC) 요원이었음을 증언하는 미 육군 정보문건이 공개돼 화제다. 그동안 미국이나 이승만 배후설 등 추측만 무성했던 우리 현대사의 의문이 진실의 한 자락을 살짝 내비친 셈이다. 공개된 문건만 보고 미국의 백범 암살 개입 여부를 논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해방정국의 혼란스러웠던 분위기가 되살아나는 것 같다.

<송문홍논설위원>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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