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장석권/선거 고질병 대수술을

  • 입력 2001년 7월 26일 18시 22분


헌법재판소가 전국구 국회의원의 선출 방법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선거법 개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그러나 선거법을 개정할 경우에도 위헌으로 지적된 부분만을 개정할 것인지, 아니면 우리 선거의 고질이라고 할 수 있는 금권선거 및 과열선거, 고비용저효율의 정치, 망국적인 지역주의 등을 타파하기 위한 전면적인 개정을 할 것인지는 온 국민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한 몇 가지 안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첫째, 1개 선거구에서 1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와 권역별(圈域別) 비례대표제를 병행한 1인2표식 정당 명부 투표제는 서유럽에서 유일하게 독일만 채택하고 있는 선거제도이다. 이 제도를 채택할 경우에는 전국을 하나의 정당명부 투표구로 할 것이냐, 아니면 전국을 몇 개의 권역으로 나눠 정당명부식 투표를 할 것이냐를 결정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독일은 연방국가이기 때문에 간단하게 주(州)를 권역별 투표단위로 삼고 있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단일국가에서는 비례대표의 투표 권역을 어떻게 획정할 것인가가 또 다시 어려운 문제로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소선거구제에서 오는 지역주의의 폐단을 시정하고 전국 정당화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지역구 의원의 수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의원의 수를 균등하게 반반(半半)으로 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현재와 같이 소선거구제와 전국구 의원 수를 그대로 유지하고, 정당 명부에 투표만 하게 할 경우 지역주의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한 전국 정당화의 효과는 별로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왜냐 하면 정당명부식 투표로 선출되는 의원의 비율이 낮으면 낮을수록 전국 정당화 효과, 즉 지역주의 타파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둘째, 지역 선거구제를 중선거구 또는 대선거구제로 변경하고 정당 명부에 의한 비례대표의원의 수를 현행대로 개정하는 방안이 있다. 그러나 중선거구제의 경우 지난번 정치권에서 구상하던 것처럼 한 선거구에서 2, 3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정도의 중선거구제는 인구가 분산돼 있는 농촌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금권 과열선거 억제에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좁은 지역에 인구가 집중돼 있는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경우에는 그 폐해가 더욱 심화할 염려가 있다.

즉, 서울을 예로 들면 한 선거구에서 2, 3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를 채택할 경우, 현재 소선거구제에서 몇 개의 동(洞)으로 구성됐던 선거구가 구(區) 단위 이상의 선거구로 단순 확대되는 결과만 가져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경우 지역의 범위가 어중간해지기 때문에 금권선거 및 과열선거가 오히려 심화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고비용 정치제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당 지구당의 경우 오히려 비용이 늘어날 가능성마저 있다.

한편 한 선거구에서 5명 이상의 의원을 선출하는 대선거구제를 채택할 경우 농촌 지역의 선거구가 지나치게 광범위해지기 때문에 직접선거의 의미가 퇴색할 염려가 있다.

셋째, 중선거구제와 대선거구제를 혼합적으로 채택해서 농촌지역에서는 중선거구제를, 그리고 서울을 비롯한 광역시의 경우에는 대선거구제를 실시하는 방안이다. 중선거구에서는 2∼5명의 의원을, 대선거구에서는 6∼10명의 의원을 선출하게 한다면 지역이 워낙 광범위한 데다 유권자수도 많기 때문에 입후보자들이 돈을 쓴다고 하더라도 그 효과를 예측하기 어려워 사실상 금권선거 억제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뿐만 아니라 고비용 정치의 원인이 되는 지구당 사무소도 그 기능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자연히 폐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대선거구제를 병행해 실시하는 경우에도 관건은 정당명부식 투표로 선출되는 비례대표 의원의 비율을 대폭 높일 수 있을 것이냐가 문제다. 현재와 같이 비례대표 의석이 전체의 4분의 1 남짓한 낮은 비율에 계속 머무를 경우에는 전국 정당화를 통한 망국적인 지역주의 타파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차제에 ‘땜질식’ 제도 개선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정치권 전체의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장 석 권(단국대 교수·헌법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