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우룡/美의원들도 우려하는데…

  • 입력 2001년 7월 18일 18시 19분


‘나쁜 뉴스’가 ‘좋은 뉴스’란 말이 있다. 언론의 기본적인 기능은 우리들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한 비판과 감시이고, 뉴스의 핵심은 부정부패 부조리와 관련된 사건사고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언론과 정부는 긴장과 갈등의 관계이기 쉽다. 뉴스를 제공하는 측과 이를 취재하는 측의 사이가 매우 좋다면 그것은 언론이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기자가 공직자들을 격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본분을 다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생리적으로 언론은 권력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데 반해서 정부는 매사를 숨기려는 속성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정부의 비밀주의는 언론의 공개주의와 마찰을 빚기 마련이다. 정부는 가장 중요한 뉴스원(源)인 탓에 언론 취재의 표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정부와 언론은 적대 관계에 있기 쉽고,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우는 언론은 취재 보도 비판이라고 하는 구조적 특권을 누리게 된다.

미국 하원의원 8명이 한국의 언론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내용의 서한을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편지에는 전직 장관이 ‘언론과의 전쟁’을 촉구하고 나서서 김대통령으로부터 치하를 들었다는 내용이 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연초에 김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언론개혁을 촉구한 지 몇 주만에 400명이 넘는 국세청 요원들이 ‘빅 3’로 불리는 동아 조선 등 3개 신문을 중심으로 23개 언론사를 전면 조사한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 언론의 세무조사는 마침내 국제적인 이슈로 비화한 듯 싶다.

조세정의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세무조사’나 ‘감사’가 어떤 뜻을 갖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공공기관의 책임자를 교체할 필요가 있을 때 흔히 감사의 칼을 빼들었고, 정부에 협력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선 세무조사를 단행한 예가 많지 않았던가. 올바르게 행사하지 않으면 공권력은 자칫 폭력이 되기 쉽다.

한글사전에 따르면 폭력은 ‘함부로 사나운 짓을 하는 힘’이다. 어떤 권력집단이나 반대파 등을 타도하거나 분쇄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는 정치성, 군사성의 강제적인 힘이 바로 폭력인 셈이다. 폭력은 사람 동물 재산 등에 가하는 물리적, 심리적 위해와 상처 또는 죽음을 일으키는 모든 행위로 정의된다. 폭력은 물리적인 것 외에도 언어적 심리적 그리고 형이상학적인 것을 포함한다.

‘언론과의 전쟁’이 선거가 다가오는 시점에 필수 불가결한 언론자유를 억압시킬지 모른다는 미 의원들의 지적은, 언론의 자유가 한 나라의 문제를 넘어 인류 전체의 문제임을 말해준다.

언론의 세무조사는 검찰 수사로 발전돼 가고 있다. 언론사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는 별개의 문제라고 강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족벌언론, 수구언론이란 이름의 낙인찍기 캠페인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정직하게 생각해보자. 왜 3대 주요신문이 수도권에서 75%에 가까운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가. 사상의 자유시장 원리는 자유 언론의 전제이다. 물론 모든 국민이 이성적인 독자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신문시장의 비대칭적 규제가 타당한 일인지 의문스럽다.

소유와 경영이 반드시 분리돼야 하는가. 미국의 경우, 소유와 경영이 일치될 때 방송사 면허를 우선적으로 발급한다. 소유와 경영이 일치될 때 사시와 논지가 일관성 있게 유지, 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유지분에 관해서도 상한을 30%로 제한하려는 입법 추진은 온당치 않다. 사기업인 신문과 신탁모델을 내세우는 방송매체를 혼동하는 데서 나온 잘못된 발상이다. 공동판매를 제도화하는 일 역시 정기간행물법 개정으로 강제할 일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업계 자율로 시행하는 것이 옳다.

언론개혁의 올바른 방향은 미디어 정보의 질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 정보의 질은 기자와 프로듀서의 질과 비례한다. 언론인의 자질을 높이고 윤리의식을 강화하는 데 한층 힘을 쏟아야 한다.

오히려 지금까지 우리 언론은 연구개발과 인력양성을 너무 등한시해왔다. 앞으로 좋은 언론인과 함께 좋은 수용자를 만드는 데 적극적인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 자유로운 표현은 자유로운 국민의 초석이라고 하지 않는가.

김우룡(한국외국어대 정책과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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