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김미진씨,4번째 장편소설 '그 여름 정거장' 펴내

  • 입력 2001년 7월 9일 18시 42분


마흔 살이란 말을 듣고 잠시 허둥거렸다. 갓 서른이 넘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나이를 가름하기 힘든 동안(童顔) 때문만은 아니었다. 김미진씨(40)의 신작 장편 ‘그 여름 정거장’에 가득한 싱싱한 젊은 언어가 불러일으킨 오해였다.

영상세대의 감수성을 날렵하게 그렸다는 ‘모짜르트가 살아있다면’으로 데뷔한 지 6년째. 그의 4번째 장편소설 ‘그 여름 정거장’은 유럽 배낭여행 중 이뤄진 20대 젊은이의 첫사랑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 이반은 전주 이씨 문중에서 태어나 조선 황실의 대를 잇고 있는 황세손(皇世孫)이다. 암선고를 받은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싶어 로마를 찾았다가 여대생 유준을 만난다.

유럽 관광지에서 만난 남녀가 애정을 키운다는 설정은 영화 ‘비포 더 선라이즈’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로마 파리 바르셀로나 아를르(고흐가 자살한 마을)를 거치며 두 사람은 만남과 헤어짐을 거듭한다. 관계의 진전이라고는 두 번의 입맞춤이 고작이다.

“먼저 소설을 읽은 친구들이 두 사람이 같이 자야되는 것 아니냐고들 하더라구요. 하지만 저는 연애소설의 고정된 틀에 빠지기가 싫었어요. 그 대신 스무살 청춘이 겪는 첫사랑에 생생한 현장감을 살리고 싶었죠.”

그녀가 말하는 ‘현장감’이란 한국 대학생 배낭여행족들이 광복절인 8월15일 파리 에펠탑 앞에서 모여 ‘코리아 파이팅’ 만세 삼창을 외치는 풍경 같은 것이다.

“사실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젊은이들 모두가 주인공이예요. ‘세계화’라는 대세 속에서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한국 젊은이들이 왜 이국땅에서 촌스러운 행동을 벌일까요. 옛 선배들이 고래를 잡으러 동해 바다로 떠났듯 요즘 젊은이들은 유럽으로 떠나서 ‘꿈’이란 고래를 발견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 ‘꿈’은 적어도 이 소설에서는 어떤 지향점으로 수렴되지 못하고 흩어져있는 듯하다. 그래서 문학평론가들에게는 이 소설이 유럽 기행문이나 ‘1년후 사랑의 언약식’을 약속하는 통속소설로 읽힐 법하다.

하지만 젊은 세대가 가진 이중적인 언어와 감성을 포착해낸 점은 주목할 만하다. 다른 소설에서 찾기 힘든 악의 없는 공격적인 대화, 무관심을 가장한 관심 같은 젊은 세대의 정서가 생생하게 녹아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문단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고, 내 소설을 자기복제하지 않고 늘 다른 이야기를 소신있게 쓰고 싶어요. 자유롭지 않다면 소설가를 해서 뭣해요?”

연세대에서 미술사를 강의하는 김씨는 방학이 되면 어김없이 배낭을 매고 혼자서 이국의 도시를 전전한다. 며칠 뒤에는 ‘자식 같은 소설을 팽개치고’ 에게해의 푸른 바다로 떠날 예정이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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