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임성진/'핵폐기장' 강행 더 큰 禍 부른다

  • 입력 2001년 7월 6일 18시 35분


《본보 7월 3일자 A6면 ‘여론마당’에 실린 강정민 핵공학박사의 ‘핵처분장 반대만이 능사인가’에 대해 반론이 제기됐다. 핵폐기장을 둘러싼 토론을 활성화하기 위해 반론을 게재한다.》

핵폐기장 부지 선정을 위해 정부는 마감시한까지 연기하며 노력했으나 결국 마감인 6월 말까지 유치신청서를 낸 지방자치단체는 없었다. 몇몇 지역에서 주민들의 유치 청원이 있었으나 막대한 지원금에 이해 관계가 얽힌 사람들의 움직임일 뿐 절대 다수의 주민과 지자체는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핵폐기장 추진론자들은 폐기장 시설이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중저준위폐기물은 고준위와 달리 방사능의 정도가 낮아 사고 위험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이 주장의 허구성은 현재의 핵폐기물 분류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원래 국제원자력기구가 채택했던 다섯 등급의 분류방식은 미국 등의 압력에 의해 1994년 3개로 단순화됐다. 방사능 오염의 강도에 따른 분류가 세분화될수록 위험도의 지정과 처분 방법이 까다로워지기 때문이다.

한국은 핵폐기물을 고준위와 중저준위 두 가지로 분류하고 있는데, 이 중 중저준위는 방사능 강도가 고준위가 아니므로 안전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사용 후 핵연료나 재처리 후의 연료 찌꺼기만 고준위에 속하고 나머지는 모두 중저준위로 분류되므로 이 역시 독성이 강한 방사능 물질이다. 독일에서는 중준위 폐기물의 일부는 저장 과정에서 초고열이 발생하므로 위험도 면에서 고준위와 동일한 수준으로 취급한다. 저준위 폐기물도 플루토늄239나 반감기가 1600년이 넘는 라듐266 등 독성이 강한 핵종이 포함돼 있어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중저준위 폐기물도 위험성이 높아 자연계의 변화나 전쟁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수백년에서 수천년 동안 격리 저장돼야 한다. 하지만 미국의 웨스트 밸리나 반웰의 경우처럼 중저준위 폐기장에서는 용기상태나 자연조건의 변화에 따라 언제라도 방사능 유출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확률은 높지 않지만 초고열을 방출하는 중준위 폐기물의 경우 대형사고의 위험도 있다.

현재 추진 중인 핵폐기장이 고준위 폐기물과 무관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한국은 국제적 규제 때문에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없어 고준위 폐기물의 처리 방법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핵폐기장에 임시 보관될 고준위 폐기물의 저장기간이 얼마나 길어질지는 누구도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현재의 핵폐기장 관련 논의에는 고준위 폐기물의 위험성도 함께 거론돼야 한다.

핵폐기물은 원자력 이용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이기 때문에 원자력정책과 분리할 수 없는 연관성을 갖는다. 따라서 원자력정책에 대한 근원적인 검토 없이 핵폐기물 처리만 논할 수는 없다.

그 동안 공권력과 구 한전의 자금력을 총동원하고도 부지 선정은 계속 무산됐다. 정부가 다시 지정고시라는 일방적인 방법으로 사업을 강행한다면 상황은 악화되고 사회적 갈등은 증폭될 것이다. 탈핵과 에너지전환이 세계적 추세로 자리잡고 있는 지금 정부의 인식 전환만이 핵폐기장 문제를 근본적으로 푸는 길이다.

임 성 진(전주대 교수·환경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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