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등소평은 문화혁명때 뭘했나? '불멸의…'

  • 입력 2001년 6월 8일 18시 42분


◇ '불멸의 지도자 등소평'/덩룽(鄧榕) 지음/ 임계순 옮김/645쪽/ 1만9900원/ 김영사

생전에 일본을 방문한 덩샤오핑(鄧小平)에게 일본 사람이 신칸센을 태워주면서 “정말 빠르지!”라고 자랑하자 덩샤오핑이 “어딜 가려고?”라고 응수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의 딸이 저술한 이 책을 펼치며 회상해 보니 그가 유명을 달리한 지도 벌써 4년이 지났다.

그는 죽의 장막을 드리운 채 계급투쟁과 혁명에 몰두하던 문화대혁명의 시기에 몇 번이나 실각했지만 오뚜기처럼 쓰러지지 않고 재기해 개혁과 개방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힌 개혁의 설계사였다. 낭만적 시인이었으며 주의(主義)를 좋아했던 마오쩌뚱과 비교하면 특별히 매혹적인 면이 없지만 그는 실용적 이성과 ‘상식의 카리스마’를 견지한 지도자였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거나, 실천만이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표준이라는 논리로, 마오쩌뚱이 내린 지시나 결정은 무엇이든 옳다는 당시의 지배적 관념에 반기를 든 데서도 그의 이러한 면모가 잘 드러난다.

최근에는 개혁 개방의 후유증이라고 할 수 있는 극심한 빈부격차, 실업, 부패 문제 때문에 일각에서 문화대혁명과 마오쩌뚱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에 반해 중국이 고도성장을 구가하면서 미국의 독주를 제어할 강국으로 부상한 것은 사회주의에 시장경제를 결합한 이른바 중국적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를 채택한 덩샤오핑의 실용주의적 노선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개혁 개방의 성과와 함께 그 부정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는 요즈음 마오와 덩의 삶과 사상을 비교 검토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 될 법하다.

저자 덩룽(鄧榕)은 1993년 중국에서 발간된 저서 ‘나의 아버지 등소평’(상권)에서 신중국 성립 이전의 혁명가로서의 덩샤오핑의 삶을 다룬 적이 있다. 그 책은 막내딸으로서 당시 귀가 어두웠던 덩샤오핑 말년의 ‘비서실장’ 노릇을 하고 있던 저자의 특수한 신분 때문에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지만 내용적으로는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사실 그 책이 다룬 시기는 모두 저자가 태어나기 이전이었다.

이번 저서는 그 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문화대혁명 시기의 덩샤오핑의 파란만장한 정치적 역정과 이 때문에 벌어진 희비극의 가족사를 그려낸 일종의 방대한 문혁 시기의 ‘덩샤오핑 연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문혁 시기는 저자가 꽃다운 16세에서 26세까지로 세상사에 대해서 나름의 기억과 견해를 가질 수 있는 나이였기 때문에, 단순히 자료나 증언에 의지한 전작에 비해 훨씬 생동적인 기술을 할 수 있었다. 저자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기에 매우 좋은 위치에 있는 것도 이 저술이 탄생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덩샤오핑에 관해 쓰면서 문혁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으며 동시에 문혁을 말하면서 덩샤오핑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이 책이 단순한 덩샤오핑에 대한 딸의 회고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혁 이해와 비판이라는 거대한 문제와 연관되어 있음을 은근히 천명하고 있다.

사실 덩샤오핑과 문혁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또한 문혁은 중국의 현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인류사적 실험이었다. 문혁은 종결된 지가 이미 20년이 넘었지만 중국 사회에 미친 영향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사회에서는 중국에 대한 이해가 아직도 너무 전통적 면모에 머물고 있는데 이 책이 이러한 잘못을 교정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리라 생각된다.

다만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추모하는 딸의 입장에서 서술된 다분히 개인사적인 이야기이며 그렇기 때문에 현재를 정당화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책은 문혁을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전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덩샤오핑에 대한 마오쩌뚱의 비판과 보호, 덩샤오핑과 린뺘오(林彪) 4인방의 투쟁, 덩샤오핑의 인간적이고 가정적인 면모 등은 새롭게 밝혀진 내용이다. 또한 130장에 달하는 방대한 사진 자료 중에서 처음 선보이는 것이 많다. 그러나 아버지를 등에 업은 ‘태자당’의 자기 드러내기가 아니냐는 혹독한 비판도 있다.

황희경(성심외국어대교수·중국철학)

◆ 저자 덩룽(鄧榕)

1950년 스취엔(四川)성 충칭(重慶) 출생. 덩샤오핑의 막내딸로 베이징의학원을 졸업했으며 문화대혁명 중에는 샌베이(陝北)에서 노동했고 덩샤오핑의 말년에 그의 곁을 지켰다. 주미 중국대사관 3등 서기관, 제8기 전국인민대표회의 대표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국제우호연락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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