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농장의 하루]3평 남짓 공간에 사랑이 '무럭무럭'

  • 입력 2001년 5월 6일 18시 44분


부처님 오신 날인 1일 서울 서초구 원지동 대원농장. 간간이 내리는 빗방울을 마치 ‘부처님이 내려주신 공덕’인 양 반기며 안도의 숨을 내쉬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난달 주말농장 밭을 분양받아 씨를 뿌려놓고 비를 기다리던 ‘주말 농부’들. 비는 불과 10분 정도 내리다 그쳤지만 오랜 봄가뭄에 지친 이들의 마음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이날 주말농장을 찾은 황의대(46·자영업) 신은화씨(42) 부부. 밭을 가꾼 지 벌써 5년. 이젠 ‘베테랑’이 됐다. 올해는 3평 남짓한 밭에 고추, 가지, 방울토마토, 열무 등을 심었다.

▽주말농장은 체험학습장〓“엄마, 학교에서 배운 배추흰나비야!”

외동딸 지현양(10·양재초교3)은 밭과 하늘을 번갈아 보며 자연과 호흡했다. 딸에게 체험을 통해 자연의 소중함을 깨우치려 했던 ‘주말농장 학습법’이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떨떠름했어요. 괜한 짓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데 파란 싹이 돋는 걸 보고 나서 솔직히 감동했어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전형적 도시사람인 신씨는 남편의 주말농장 제안에 “난 못해”로 버텼다. 그러나 딸이 조그만 손으로 흙에서 잔돌을 추려내는 모습을 지켜보며 차츰 마음이 풀리기 시작했다.

어느덧 신씨는 ‘체험학습의 전도사’로 변신했다. 딸 학교의 체험학습 모임에서 주말농장의 이점들을 역설해 20여명의 학부모를 주말농부로 끌어들인 것. 이들은 수시로 주말농장에 모여 자녀와 함께 직접 채소를 재배하며 자연과 교감을 나누고 있다.

▽3평의 미학(美學)〓“3평이라고 우습게 봐서는 안돼요.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정성을 들인 만큼 돌려주거든요.”

신씨네 밥상에 오르는 채소는 모두 밭에서 직접 거둔 것. 농약을 쓰지 않아 가족들의 건강을 지키는 데도 그만이다.

신씨의 권유로 올해 처음 주말농장을 찾은 주부 송미정씨(39)에게 3평에서 일궈낸 ‘자급자족’은 절약의 미덕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송씨는 “남은 채소를 버리다 아들에게서 ‘힘들게 농사지어 얻은 채소를 왜 버리느냐’고 핀잔을 들었다”면서도 흐뭇해하는 표정이다.

서울시 농업기술센터 권혁현 원예기술팀장은 “섭씨 20도 이상에서 대부분의 채소는 씨를 뿌리고 25일이면 수확할 수 있다”며 “3평 정도면 4인가족이 먹기에 적당한 양의 채소를 거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잠시 쉬어가세요〓강남구 역삼동에서 수입품 유통업체를 운영하는 황씨 부부에게 4년 전 난데없이 닥친 외환위기는 커다란 시련이었다.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는 주말농장이 한 몫 했다. 돌이켜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지만 밭에 나와 몇 시간 땀흘려 일하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기운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 이들 부부의 공통된 얘기.

‘신참내기’ 주말 농부지만 송미정씨도 흙이 주는 교훈을 새삼 깨닫는다고 거들었다.

“정서안정이 가장 큰 혜택이죠. 백화점에서 다른 사람과 어깨라도 부딪치면 짜증이 나다가도 주말농장에만 오면 웬만한 실수는 웃음으로 받아넘기는 여유가 생겨요. 땅의 매력이 아닐까요.”

이들 가족은 “체험학습 모임의 이름이 ‘좋은 만남’이어서 종종 결혼정보회사가 아니냐는 얘기를 듣는다”며 함박 웃음을 터뜨렸다.

■분양면적 1계좌에 3~5평…연회비 2만원선

서울시가 농장주와 시민들의 다리가 돼 밭을 분양하는 주말농장 프로그램을 운영한 지 10년. 올해만 서울시내 43개 농장에서 1만3000여명이 텃밭을 가꾸고 있다.

서울 및 수도권과 전국 대도시를 중심으로 216개의 주말농장을 소개해주는 농협중앙회에도 올해 3만9700여명이 분양을 신청했다.

주말농장에 처음 문을 두드리는 사람도 낯선 ‘농사일’ 때문에 망설일 필요가 없다. 서울시 농업기술센터나 농협중앙회가 파종부터 수확까지 기술지도를 해준다. 농장주들도 비료 뿌리기 등 토지관리와 기술지도 등을 돕는다.

분양면적은 서울시의 경우 계좌당 3∼5평. 평당 2만원 정도의 연회비를 내야 한다.

3월까지 대부분 분양이 끝났지만 일부 물량이 남아 있다. 수도권에서는 20% 정도 미분양 텃밭이 있어 서두르면 ‘행운’을 챙길 수 있다. 서울시 농업기술센터(02―3462―7924)나 농협중앙회(02―397―5622)에 문의하면 된다.

<차지완 기자>marud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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